대한민국 답사 1번지. 설악산

by 송다니엘



우리나라에서의 산행은 우리의 삶, 뿌리와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는바, 나는 산행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다. 여러 계기가 된 산들이 있었겠지만, 설악산은 그 웅장한 스케일과 험난한 난이도로 인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한편 1년 전에 시작된 종아리 통증부터 족저근막염까지, 타국에서 병원 가는 게 불편하다는 이유로 치료하지 않았고, 도전적인 산행을 꺼리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설악산에 가봐야 울산바위밖에 못 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산행 전날, 걱정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오색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인제를 거쳐 설악산 국립공원에 진입하는데 심장이 마구 두근대기 시작하며 잃어버렸던 나의 등산 욕구가 마구 분출되는 듯하다. 한계령에 도착해 설악산의 웅장한 모습을 보니 무조건 내일 이곳에 오르겠다는 생각이 샘솟는다. 일단 어떻게 될지 몰라도 일단 대청봉부터 오르고 결정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꼭두새벽 산행을 시작했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나의 다리는 매우 안녕했다. 오색 코스가 보통 산의 오르막보다 훨씬 가파르고 길지만, 대청봉까지 무난히 올라왔고 환한 일출, 운해와 더불어 속초 바다와 설악산의 웅장한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올라오기 전까지만 해도 확신하지 못했지만 내가 건재하다는 걸 느끼고는 가보지 못한 공룡능선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산을 꽤나 탄다는 사람들은 인증하던 공룡능선. 그게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렇게까지 회자하는지 궁금했다. 백두대간의 능선을 타본 경험도 꽤 있다고 생각했고 불과 5km 정도의 거리를 5시간 걸린다는 안내판에 코웃음 치며, 내 속도면 두 시간 길어도 세 시간이면 충분히 주파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늘, 크게 혼쭐났다. 어쩌면 오색에서 힘을 많이 빼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한두 번의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 할 때만 해도 경치에 감탄했지만, 그 이후엔 그 어떤 장관도 내게 감동보다는 걱정스러움을 안겨줬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 능선이 내게 두려움을 준 셈이다.


어찌어찌 초주검이 되어 능선을 통과했다. 원래 계획은 속초, 신흥사 방면이었지만 시큰거리는 무릎에 훨씬 더 완만할 것 같은 백담사로 방향을 틀었다. 전에 가보지 못했던 오세암을 보며 좋기도 했다. 이것도 한순간. 끝없는 하산길에 정신이 혼미했다. 정말 쓰러질 듯,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등산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할 땔 즈음 백담사에 도착한다.

백담사와 오세암은 세속과 격리된 탓에 생육신인 매월당 김시습, 만해 한용운 선생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의인이 많이 배출된 이곳에 한때 희대의 악인도 머물렀다. 그 악인이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는 잘은 모르겠으나 세속과 멀리, 사람들의 접촉을 못 하게 하려고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지 않았겠는가.


겨우겨우 택시를 타고 오색으로 다시 돌아왔다.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온천탕이 있는 숙소에 하루를 더 묵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이런 산행은 지리산 무박 종주 이후 처음이다. 앞으로도 이런 산행이 내게 있을까 싶을 정도. 무엇이 더 힘들었냐고 물으면 나는 모르겠다. 도전을 하는 건 참 좋은 일인데 너무 힘들게 하면서까지 도전하고 싶지는 않다. 그로써 내가 너무 힘드니까.


즉, 인생으로 비유하면 무엇보다도 주변 사람 다 뜯어말려도 하고자 하면 해낼 수 있다는 점과 대신에 그 길은 그냥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피똥 쌀만큼 고생을 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고생 끝에 얻는 무언가는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그당시 유행하던 낭만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던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알프스를 보고서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지루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는데, 적어도 이것만큼은 낭만주의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자연은 정말 아름답고 위대하다. 앞으로도 설악산 케이블카가 생기지 않고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주어 내가 힘들고 땀 흘려 도전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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