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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니엘 Jul 21. 2024

타이밍이 중요한 것은 인생뿐만이 아님을

정책의 성공여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이 자발적으로 러시아 가스 수입을 중단했을 때, 그들은 더 강력한 친환경 입법을 걸 수 있는 드라이브가 생겼다. 하지만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전개로 이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관료들은 너무나도 빠른 입법 절차를 밟는 것에 대해 우려했고, 친환경 에너지 관련 정책을 1년 후에 내놓기로 한다.      


이 당시 관련된 정책을 만드는 부서의 의사결정자였던 발표자는, 이와 같은 호재가 있을 때 어떻게든 빨리 정책을 만들 것을 주문했지만 결과론적으로 그러지 못했고, 1년 후에 나온 정책은 대중들의 강한 저항을 받게 됐다. 사람들에겐 모종의 아래와 같은 심리가 생긴 셈이다.     


“러시아 가스 수급이 끊겨도, 공급을 다각화하여 에너지위기 (Energy Crisis)를 극복했는데, 지금보다 더 급진적인 환경규제를 할 필요가 뭐람? 그냥 겨울에 보일러 쓰면 되지.”     


나의 지도교수는 이 사례를 설명하며, 정말 중요한 순간엔 완벽한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날밤을 새워서라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실리콘 밸리 같은 접근 방식이 필요할 때도 있겠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가 나올 땐 나의 발언권이 없었지만, 이게 전형적인 한국 사회의 접근 방식이 아닌가. 물론, 그게 구성원들을 매일 같이 갉아먹게 만드는 요인이지만, 이것만큼 한국 사람들의 장점도 없다고 느낀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에 대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기간 안에 결과물을 내는 것.      



관련하여 또 하나의 일화가 생각난다. 35년 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할 때다. 아무도 이렇게 급작스레 통일될 거로 생각하지 못하여 국민 사이에 통일 방식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역사를 통해 알듯이 당시 서독 정부의 총리인 헬무트 콜은 서독 체제를 중심으로 ‘최대한 빨리’ 통일하겠다고 결심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년이 지나 베를린으로 수도를 옮기고 통일 정부를 완성했다.


정책을 하나 세우는데도 1년이 넘게 걸리니 마니 하는데, 거의 반세기 동안 다른 나라, 극단적으로 대치하던 국가가 통일하는 게 쉬울 리가 있었겠는가. 이 모든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이렇게 빠르게 통일하지 않았으면, 양차 세계대전의 주범인 ‘통일된 독일’이 재탄생하는 것을 그 어떤 국가도 원치 않았을지도 모르고, 이처럼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구 동독 지역과 기타 독일의 소득 격차는 물론이고 극우 정당 지지 등 많은 사회 갈등 요소가 이로부터 비롯됐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만큼 현대사에 대단히 성공적인 정치 결정도 없을 테다. 적어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만 해도, 30여년 간 이어진 유럽 내에서의 (적어도 서유럽)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준 사건이니.     


이렇게 시간의 측면에서 효율적이었던 독일은 어디로 갔을까. 어쩌면 30여년 간의 평화 시대를 거치며, 관료화 내지는 복지 향상, 산업에서의 원가 절감 등에만 치우친 나머지 기존의 미덕까지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가끔 이곳은 절차를 준수하는 것을 넘어, 너무 많은 탁상공론, 행정적 절차 때문에 정작 중요한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독일은 그렇다. 독일 내에서도 이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계속 나오곤 있는데 쉽게 바뀌려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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