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

몽블랑에서의 시간

by 송다니엘

고양이까지 총 세 생명체가 편한 집을 떠나 프랑스 알프스로 향하는 여정을 거의 한두 달 전부터 계획했다. 이는 연락이 거의 끊겼던 (10년 전, 생도 시절 순항훈련 때 처음 만났던) 프랑스 친구가 결혼식에 왔고, 그녀가 몽블랑에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쁜 마음에, 나는 물었다.


“혹시 너희 여름휴가 계획 있어? 아직 계획 없으면 우리랑 집 바꿀래?”


친구는, 이미 한달가량의 휴가 계획이 있다며 그동안 집이 비어있다고 알려줬다. 이게 어찌나 좋은 소식인가. 아내의 방학을 기점으로, 우리는 열흘간 그곳에 지내겠다고 계획했다. 나는 평일에는 온라인으로 일하고, 주말에 몽블랑 주변을 등산하겠다고... 들뜬 마음으로 8월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두근두근!!


그러던 와중, 얼마 전 새로운 친구가 생명을 갖게 되면서, 계획의 실행 여부가 근본적으로 흔들렸다. 물론, 그것이 훨씬 더 큰 축복이자 중요한 일이면서도, 오래 기대했던 여행이 취소되니 마니 하니 아쉬움도 컸다.


우여곡절 끝, 결국 네 생명체가 예정보다 이틀 늦게, 프랑스로 향했다. 가는 길은 쉽지는 않았지만, 아주 험난하다고 보긴 어려웠다. 최초에 저번에 이탈리아를 가는 길보다 물리적 거리가 훨씬 짧기도 했거니와 아침 일찍 출발했고... 가족들의 컨디션을 고려하며, 쉬엄쉬엄 갔다.


이탈리아를 갈 땐, 루체른 호수, 루가노를 지났다면, 프랑스 알프스로 가는 길은 다소 서쪽으로 치우친다. 바젤-베른-프리부르-레만호.


출발하고 베른 주변을 지나가기 전까지.. 즉 두 시간 동안은 볼만한 게 거의 없었는데, 그때부터 조금씩 보이던 멋진 풍경은 레만 호수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레만호 뒤에 있는 병풍 같은 알프스의 풍경과 레만호는 정말이지 그림이었다. (아내가 사진을 찍지 않았다… ) 원래는 그곳에서 로잔, 제네바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타려고 했으나, 레만호수를 지나 더 짧은, 산을 넘어가는 길을 가기로 했다. 50km가 적지만, 시간이 비슷한 이유는 알 수 있었다. 낭떠러지의 엄청난 경사도의 길, SNS에서만 보던 꽤 아찔한 광경이었다.

사진보다 훨씬 아찔했다…


그곳을 내려가 알프스의 자그만 마을인 Trient에서 잠시 알프스 물을 마시고, 내려가니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이다. 독일, 스위스를 거쳐 이제는 프랑스.

국경을 지나자마자 엄청난 산길이었는데, 더 가다 보니, 저 멀리 만년설이 뒤덮인 몽블랑이 보였다. 아 저것이구나. 다 왔거니 싶었지만, 그곳에서 샤모니까지 20~30분, 샤모니에서 친구가 사는 집까지 거의 40분을 더 가야 했다.

샤모니..!



친구는 몽블랑에 산다더니, 완전히 외곽이네 싶었거늘... 도착하고 보니, 이곳이 Tour du Mont Blanc (TMB) 코스라는 걸 실감한다. 온갖 언어를 하는 스틱을 찍는 등산객부터, 수많은 차량이 그곳을 지나갔다.


친구집 앞의 풍경..


아. 그리도 꿈에 그리던 몽블랑에 왔다. 군복을 벗을 때 즈음 봤던 이 하이킹 코스. 그때는 전역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어려우니, 상대적으로 짧은 이 산행이라도 하겠노라고 생각했거늘, 예상치도 못하게 이곳에 왔다. 아마 독일 1년차, 바이에른의 시골에 살 때도, 이곳에 언젠가 와보고 싶노라고 꿈꾸어왔던 듯하다. 가까운 곳에 오고서도, 삶이 바쁘고 주머니 사정이 풍족하지 못해 엄두도 못내던 곳을 이렇게 좋은 기회에 오게 되어 참으로 기뻤다.




기쁜 것도 잠시...

문제점이 금방 생겼다.


먼저, 아내의 컨디션은 알프스를 넘으면서, 점점 안 좋긴 했다. 나는 그래도 하루 정도 푹 쉬고 잘 먹으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또, 아이 셋이 있는 집이라 그런지... 나는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먼지 알러지가 심한 아내는 눈물 콧물범벅에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 침실이라도 깨끗하게 청소하고, 고양이도 케어한 이후... 그녀의 콧물은 다소 잦아들었다.

집안에 마땅히 먹을 게 없어 주린 배를 잡고, 경사가 심하고 좁은 길로 산 아래까지 내려가 마트에서 장을 봤다.

친구집의 와인창고는 정말 대단했다…. 차마 깔 수 없었다..


프랑스는 일요일에도 마트를 열다니! 들뜬 마음에 장을 보러갔거늘, 웬걸! 우리가 기대했던 신선한 고품질의 식재료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렵고, 가격은 독일의 두세배이다. 아니, 독일이 슈퍼마켓 물가가 싼 건 원래 알고 있었지만, 어찌 식재료까지 이리 엉망일 수 있으랴... 이태리의 슈퍼마켓에서 환호성을 질렀던 우리는, 이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두 세배 가까운 가격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저찌 다시 돌아와 그냥 밥이나 먹자고 했거늘, 이번엔 부엌의 가스레인지가 말썽이었다 (아니 전기도 싼 나라에서 왜 가스를….!!! ) 결국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다가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었다.

가뜩이나 비싸고 품질도 그다지 좋지 않은 프랑스 슈퍼마켓에서 산 식료품을, 제대로 조리하지 못하고 먹으니, 정말 힘이 제대로 빠졌다. 그래도 견딜만 했다. 첫날이었고, 오늘 고생한 만큼 내일은 조금 나을 거라는 기대감에.


잠에 들었다. 산이라 그런지 새벽에 굉장히 추웠다. 실내온도가 16~17도였다. 아내는 컨디션이 더 안 좋아졌다.

추울 만하다.. 이런 곳이라니.


아침부터 아내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아 걱정됐다. 그리고 무언가를 먹으려고 하는데, 또 가스가 문제다.

잠만 자는 우리집 여자들..

이번에 밖에 나가서, 살면서 해보적도 없는 가스통을 바꾸기까지 했는데, 문제는 모든 가스통이 비어있다는 사실이었다. 일하다가 말고, 가스통을 들고 말도 안 통하는 프랑스 마을을 뒤지며 가스통을 바꾸려고 했으나, 그 마을엔 프로판 가스가 없었다. 운전해서 30분 거리도 갔으나, 그곳에서도 바꿀 수 없었다.

프랑스에서 가스통 바꾸기 실패..

모든 게 원망스럽고, 화가 너무 많이 난 상태에 배까지 고프니 병이 날 것 같아 일단 다시 돌아왔다.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식사를 떼우니 이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집 창고에 있는 캠핑 가스를 들고 와 유튜브로 보고 배워 익히고, 어떻게든 요리를 해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루를 또 마무리했다. 다음날에는 정말 괜찮아지겠지 하고.

제트보일의 성능은 대단했다. 이러다 캠핑족이 되려나.


다음날, 새벽부터 아주 큰 공사가 있었다. 집주인인 친구는 전날밤, 다음날 새벽부터 공사가 있을 것이라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 소리가 꽤 컸다. 아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는 이제 따뜻해지고 있고, 가스도 오늘 중에 해결할 것이고, 공사도 오늘이면 마무리되니 조금만 더 있어보자 했지만, 아내는 당장에라도 집에 가자고 했다.


캠핑가스로 불을 붙여, 아내에게 죽까지 줬지만... 아내는 점심을 먹고 올라가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마치 당장에라도 집에 가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될 것처럼. 며칠 간 마음고생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있을 때에도 어떻게든 버티려했던 나였지만,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너무 복잡한 와중에 차를 옮기러 갔다가, 친구가 소개해줬던 이웃을 만나게 됐다. 그는 내게 “별 일없어? 가스는 이제 작동해?”하고 물었다.


“사실.. 우리 이제 다시 집으로 가려고. 그래서 그런데, 혹시 우리 이제 가니까, 여기 사는 고양이랑 토끼 좀 돌봐줄 수 있어?” 라고 말하니,

이 집 동물.. 토끼가 아주 살쪘다..


원래는 전날까지만 해도, 가스 고치는 것 도와달라고 할 때는, 다소 짜증도 내던 아저씨가 딱했는지, 위로의 말을 건네준다. 사실 떠나기 전, 그에게 이 집 동물들 봐달라고 이야기하는 게 제일 꺼렸는데, 걱정말라고 하며, 그렇게 꽤 오랫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마음이 좀 풀린다


그렇게 짐을 후딱 싸고, 친구에게 작별의 인사를 남기는 종이를 남겨놓고, 그곳을 떠났다.

떠나는데, 정작 하이킹은 단 하루도 못 하고 돌아오는 게 아쉽긴 했다. 걱정했던 아내는, 야속하게도 산을 내려오자마자 본인의 컨디션이 괜찮다는 말을 했다. “고작” 해발고도 1500m였기에, 이 고도로 산소가 부족하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내 생각이 틀렸나 싶다가도, 이게 심리적인 문제일까 싶으면서도, 몸이 괜찮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돌아와던 와중, 괜히 멀리까지 왔는데 뽕이라도 뽑고 싶은 마음에 다른 곳에서 하루이틀 묵고 싶은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 강력한 후보는 그로부터 제일 가까이 있는 아름다운 호반 도시, 앙시 (Annecy)였는데, 아내도 처음에는 즉흥적으로 그러자고 하더니, 그냥 집에 가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제네바-로잔을 거쳐 총 다섯시간 정도를 달렸을까. 처음엔 그리도 멋지다고 생각했던 레만호의 풍경에도 그다지 감흥이 없다. 이미 숨막힐 듯 멋진 알프스의 풍경을 보다와서 그런지, 가보지 못한 스위스의 몇몇 마을이 표지판에 보여도 심드렁한 마음이 생긴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독일을 떠나 다른 곳을 갈 때는 지나가는 모든 곳을 다 들리고 싶다가도, 돌아올 때면 그냥 거기서 거기지 싶은 생각에 집에 가고 싶은 생각만 든다. 이건 이미 갔던 목적지가 스위스의 다른 곳들보다 더 좋아서일 수도 있고, 내 자신이 여행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려서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내겐 스위스가 계륵 같다는 생각을 몇 시간동안 하다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알프스에 있는지 48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이틀만에 다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차를 반납하니 하루가 통째로 지나갔다.




다음날. 병가를 써도 된다는 악마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출근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은 쌓여 있는데, 남에게 그다지 맡기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 컸을까.


한편, 최근 1~2주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출근하기 싫고, 직장이 지겨웠는데, 이 모든 소동 끝에 회사에 돌아가니 회사가 너무 좋다. 꽤 생산적인 며칠을 보내고, 금요일은 힘도 많이 부치기도 했다.


날씨가 따뜻해지다 못해 이젠 많이 덥다. 한동안 선선하고 춥기까지 했던 이상한 여름날이 다시 제 모습을 찾는 듯하다. 일상으로 돌아와 운동에 빠져 사니 또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우리의 여름은 이렇게 지나가고 새 생명이 내년부터는 정말 함께 할 테다. 다시 언제 몽블랑을 갈 수 있을지, 아니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차량을 빌리는 것과 같은 사소한 문제로부터 비롯해 언제까지도 자전거만 타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이제는 가족이 생기면서 어려워지는 것인지, 나 때문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자가용이 필요한가 등의 고민으로 커진다. 돈 걱정은 안 할 수가 없다. 비슷한 맥락으로, 새로운 길을 알아보는 것도, 나 혼자 하고 싶은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고민이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훨씬 크다.


세상의 부모들은 이처럼 무언갈 수없이도 많이 포기했겠거니 싶다. 이런 어른들의 삶을 사는 것에 준비가 됐고 하겠노라고 생각했거늘, 준비가 되어서 한다기보다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듯하다. 어른이라고 뭐 다 하고 싶어서 하겠는가.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어쩌면 삶이란 게 다 그런지도 모르겠다. 몽블랑에서의 나의 시간은 그런 고민을 한 성장의 시간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스포츠 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