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유주의에 대한 단상

by 송다니엘

타지에서 살다 보면 단지 피부색,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보이지 않는 차별부터 어떠한 방식으로 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불합리한 일들 때문에 살다 보면 무표정으로 있을 때도 조금은 더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거나 낯선 사람이 말을 걸 때에도 최초에는 방어적으로 대응하곤 한다. 가끔은 정말 호의적인 접근에도 애초에 의심을 깔고 반응하다 보니 상대방에게 되려 미안해지는 일도 있다.


며칠 전에도, 절대 한국에서라면 당하지 않을 기분 나쁜 일을 당하곤, 이와 같은 문제를 곱씹게 된다. 흔히들 100명 중 99명은 괜찮은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한 명인 소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분위기 자체가 - 한국의 위상이 예전과 비교가 되지 않게 올라간 것과는 무관하게 - 반이민,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이라는 걸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물론, 뉴스에서 보는 최악의 사례처럼 과격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게 과연 5년 후, 10년 후에도 지금의 수준일까? 아니면 더 악화할까.


이런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저 험상궂은 얼굴을 짓는다거나, 덩치가 커 보이려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ㆍ경제적으로ㆍ법적으로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고려하게끔 한다.

그런 이유로 학생일 때에는 이런 위협으로부터 훨씬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나의 경우엔 운이 좋게도 직장을 갖게 되곤 예전보단 훨씬 안전장치가 많이 생긴 건 사실이다.

사회적ㆍ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고, 직장에서, 몇몇 모임들로부터 꽤 많은 여러 든든한 내 편들이 생겨서 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그들이 모든 긴급상황에 모두 도움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반이민, 배타적인 반자유주의적인 바람이 온세계를 덮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으로서 어찌보면 제일 중요한 안전장치는 영주권, 내지는 시민권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제 영주권이란 게 과연 이런 문제로부터 모든 걸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인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게 6개월 내지는 1년간 해당 국가에 거주하지 않으면 박탈되는 것이고, EU 시민처럼 지금 거주하는 국가를 벗어날 수 있는 권한도 없다. 안타깝게도 한국인으로서는 다른 국가의 여권을 가지게 되면 자동으로 국적을 박탈당하게 되어 있으니, 그런 선택권은 고려할 만한 것이 아니다.




이런 비슷한 고민을 이곳에 사는 수많은 이방인은 함께 하고 있다. 나의 직장 동료 중 한 명은 얼마 전, 인도 국적을 포기하고, 독일 시민이 되었고 또다른 이는 영주권만 취득했다.

나는 영주권만 취득한 이에게 물었다. 왜 영주권만 가졌냐고. 그는 내게, 본인이 가질 수 있는 그 어떠한 혜택보다도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적어도 본인이 보기엔 본인은 독일인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말에는, 단지 생김새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 자체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았다는 뜻이 강했다. 나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서 독일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한적이 없지만, 상대적으로 여권의 파워가 약한 인도인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꽤 울림이 컸다.


그리고 이와 무관하지 않게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된다. 나는 그가 한국인이면서도, 유럽에서 일어나는 그 어떠한 폭력으로부터 본인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를 가졌으면 좋겠다. 나야 어쩔 수 없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부분이 있고, 기분 나쁜 일 있으면 견디는데, 내 자식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당하더라도 본인을 더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런 것 때문에 생애 처음으로 이것저것 관련된 법령을 찾아보는데, 미리 알아보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에 자책을 하기도 한다. 이게 부모의 마음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보게끔 한다.


이런 모든 걱정과 고민 끝, 한편으론 이보다는 더 이상적인 사회에 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언제라고 더 나았겠냐마는, 2025년 현재는, 예전보다 더 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그동안 많았던 진보적인 어젠다, 그리고 자유주의가 정말로 인류의 보편적인 공동선에 기대했냐고 한다면 그것도 동의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그 자유주의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무너지고 있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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