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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Nov 21. 2021

이역만리에서 아버지 친구와의 만남

가족의 소중함


아버지의 독일인 친구 덕분에 아주 좋은 여행을 했다. 사실 아버지 친구라고 하지만, 아버지랑 나이 차가 적지 않게 나는바, 나와의 나이 차나 아버지와의 나이 차나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버지 세대보다도 우리 세대와 더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바이에른의 알아듣기 어려운 사투리만 듣다가, 표준어에 가까운 독일말을 들으니 이해도가 훨씬 올라간다. 그전엔 10%였다면 이제는 20% 정도?


태양광과 풍력 발전기를 보며, 독일의 에너지전환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지열 발전, 지열냉난방 등에 있어 정부에서 많이 지원하는데, 실행에 옮기는 것이 여러 어려움이 있다고. 열에 대한 전환(Wärmewende)은 전기보다도 훨씬 어렵다고. 독일이라고 에너지전환이 쉬울 리가 만무하다. 또, 지하 탄광은 다 폐쇄됐지만, 아직도 지표면에서 석탄을 채굴하는 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독일의 탄광 산업에서 축적된 기술 노하우가 지열 발전으로 새로운 일자리로 전환되는건가 싶다. 이게 요즘 화두가 되는 정의로운 전환의 한 모습일테다.


통일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원래 처음부터 통일하려고 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하게 됐다고.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로선 2019년 이후 희망을 접었는데, 들어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만약 당시에 소련 수장이 푸틴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말한다.


이어서 구동독 지역에 대한 이야기.

바이에른도 보수적인지라, 어르신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긴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회의차 어떤 호텔에서 체크인하려는데 본인 이름을 보고, ‘참 Typical한 독일 이름이네?’라고 비꼬면서 이야기했단다. (아버지 친구는 그리스 뿌리) 그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다시 방문하고 싶지 않다고.


내가 합격했던 두 학교도 다 구동독 지역으로 거긴 어떠냐고 물으니, 하나는 꽤 국제적인 도시인 편이고, 다른 학교도 최근 들어 연구를 활발히 벌이는 곳이라고. 그러면서도 꼭 공부뿐만 아니라도 그곳에 가지 않은 걸 잘했다고 한다.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경험이란다. 다른 걸 배울 수도 있었겠지만, 예상되는 모욕적인 차별을 견디며 행복하지 않게 굳이 살 이유는 없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이어서 문제가 되는 극우정당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더  이상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는 가족끼리도 잘못했다가 충돌이 있는 문제니까.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계기부터, 그간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이야기하니, 두달 남짓한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구나 싶다. 독일에 진짜로 오니, 더 살고 싶냐고 물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다고 했다.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나고 잘 지내고 있으니까.


워킹맘으로 사는 게 어려움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고 아이의 아버지와 동거한 지도 20년 정도. 우리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결혼이, 그들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한다. 그래도 지금 와서 생각하기를 결혼하는 게 나을 뻔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결혼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역시 아이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말해도 무슨 말인지 몰랐을 거다. 다행인 부분.


또, 본인도 트리어를 처음 가는 거라고. 여행자와 그냥 사는 사람의 차이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나로선 덕분에 잘 다녀왔다. 언제 내가 차를 타고 그곳까지 가보곘는가. 운이 참 좋았다.


아버지와 한국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다. 아버지도 담배 피지 않냐고 물어서, 나는 공식적으로 비흡연자로 알고 있다고 하며, 어릴 때도 가끔 담배 냄새가 나는 것 같았는데, 아니라고 해서 그런 줄 알았다고 했는데, 이제야 비밀을 알았다며 웃었다. 담배라면 죄악으로 여기는 우리집에서 아버지는 밖에서 가끔씩 담배를 물었나보다 싶다. 예전엔 이해가 안 됐지만, 그런 것도 삶의 일부겠거니.. 이젠 이해가 된다.


또 소주는 정말 먹기 싫었다고. 그런 한편, 아버지는 그렇게나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한다. 밥은 별로 안 먹고 술만 많이 마셔서 걱정됐다고.


오랜만에 가족의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리스 음식은 정말 맛있다. 언젠간 그리스도 갈 수 있겠지.


정말 화목한 가정이다. 장난꾸러기이자 항상 밝은 에너지를 가진 아이가 잘 자라길 소망한다. 다음 볼 때는 키가 훌쩍 커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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