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의 흔적을 따라서

액상프로방스에서의 시간

by 송다니엘


이른 아침. 화창한 날이었다.

집에 있는 잡지에도 소개되어 있고, 평점도 좋은 해산물 가게부터 가봤다. 이것저것 먹을 게 많았지만 불어로 적혀 있는 점과 바다에 오래 살긴 했다만 매번 아저씨들이 맛있는 생선을 알려주는 것만을 듣던 젊은 해군장교의 기억밖에 없는 나로서는… 언어로도, 실물으로도 이게 어떤 물고기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다만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지 이젠 텍스트나 사진을 핸드폰으로 들이밀기만 해도, 알 수 있다.

그렇게 우린 도미, 문어, 연어를 사고 해변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바닷물의 짠내와 바람도 좋았다.


아내는 집에 머무르고 싶어했고, 나는 하루라도 더 보고 싶었다. 그렇게 난 액상프로방스로 향했다. 거리는 40km 남짓.

가는 길에 전날 운전하면서도 보였던 산이 보였는데, 저게 세잔이 많이 그렸다는 생 빅투아르 산인가 싶었다 (사실 나의 추측이 맞았다.).

마르세유, 툴롱, 니스 등 여러 익숙한 지명들이 보인다. 거의 9년 전에 이곳에 어머니와 기차를 타고 왔었고, 생도 시절 순항훈련 당시 만났던 해군 장교를 방문했었다. 그 친구는 지금 몽블랑에 살고 있다. 자유인이 되어 이곳을 지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시간과 경제적 여건만 더 되었다면, 코트다쥐르를 구석구석 갔을지도 모를 일.



액상프로방스 시내에 진입하려다가, 세잔의 아틀리에가 눈앞에 보였다. 순간, 목적지로 정해놓은 주차장이 아니라 어딘가에 잠깐이라도 세워놓고 보려고 주차공간이 많아 보이는 어느 아파트 단지로 진입해 차를 세웠다. 잠깐이면 되겠지 하고. 평일 열두시간이 채 안 된 시간이었고, 자리도 텅텅 비어 있었다. 웬걸. 베란다로 모든 걸 보고 있는 프랑스 아주머니가 내게 “무슈, 여기 프라이빗이니까 차 빼.”라고 말한다. 나는 세잔 아틀리에 앞에 5분만 보고 하면 안 되겠냐고 했지만 안 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연하긴 한데, 순간 야박하다고 생각이 들고 정내미가 떨어졌다. 주차장이 있는 시내에서 그곳까지는 꽤 경사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렇게까지 걷고 싶지 않았는데 하는 수 없었다. 경사길을 쭉 내려와 주차하고, 불평하며 다시 경사길을 쭉 올라갔다. 마음이 급하니, 발걸음이 빠르다.


그 길은 세잔의 길인데, 실제로 내가 세잔이 걸었던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니 또 마음이 누그러지고 흥미로웠다.

세잔의 아틀리에. 아쉽게도 문은 닫았다.


세잔의 아틀리에는 11월 비수기를 맞아 몇 달동안 개관을 하지 않아 밖에서만 보고, 그 길을 쭉 따라 올라가니 세잔이 실제로 생 빅투아르 산을 보고 그렸던 곳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곳엔 그를 기념하기 위해 꽤 근사한 정원이 있었는데, 주변의 분위기나 산이 보이는 풍경이나 참으로 좋았다. 사실 그 아주머니에게는 5분만 시간을 달라고 했는데, 30분 이상으로 길어질 뻔 했으니, 어쩌면 이게 더 잘 된일인가 싶기도 했다. 풍경을 눈에 담고 다시 시내로 내려갔다.


Aix, 로마어로 물이라는 뜻인데 그 이름에 걸맞게 분수가 참 많다. 로마인이 2천년도 더 전에 세운 도시이고, 로마 유적도 많은데, 워낙 세속적, 즉 부가 넘쳐서 파리의 21구라는 별명도 있다.


워낙 내가 외곽에서부터 진입하다 보니 그런 느낌을 잘 받지 못했는데, 메인 거리, 프랑스 혁명의 주요 인물이었던 미라보 거리에 다다르니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수많은 광장에 있는 분수와 여러 쇼핑몰들은 15만 남짓의 도시에 왜 TGV역까지 있었나 싶은 생각을 들게 만든다.

세속적, 어쩌면 너무나도 관광지스럽다는 마음에 그다지 이 도시에 정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나오니 골목 구석구석이 고풍스럽고 낭만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했다.


비수기인데도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여름에는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냥 집에 돌아가려다가 유일하게 오픈한 미술관 하나를 가보기로 했다.


세잔 그림이 있냐는 말에 제로라는 대답이 다소 아쉽긴 했지만, 관람료가 6유로밖에 안 하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의 인상파 그림이 리모델링 중이라 없고, 보여지는 컬렉션도 빈약했다.


다소 실망한 채로, 연계된 다른 박물관을 갔는데, 옛 성당을 개조한 곳이다. 이곳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장 플랑크라는 스위스 출신 미술품 수집가 (아트 컬렉터)의 컬렉션이 있었다. 우리에게도 꽤 유명한 바이엘러와도 협업했었고, 많은 피카소의 작품이 있었다. 식견이 좁아 처음 듣는 화가의 이름이 많았는데, 액스 (Aix) 시에서 이를 계속 후원하려는 노력 등을 엿볼 수 있었다. 분위기가 좋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걸어다니며 보려고 했는데, 역시 그 도시를 충분히 느꼈다고 하기엔 부족한 시간이었다. 다만 그 정도로 충분했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은 퇴근 시간에 걸렸는데, 역시 프랑스 제2도시 주변이어서 그런지 출퇴근 차량이 정말 많았다.


그렇게 돌아와 하루를 해안가를 따라 조깅하며 마무리했는데, 조그만 바위 절벽으로 보이는 풍경이 참 멋졌다. 어찌 보면 부산 영도의 풍경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관광지도에 여행객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문구에 다소 슬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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