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에서의 짧은 시간
로마 수도교를 둘러보고 아비뇽으로 떠났는데, 마찬가지로 30분 정도의 거리이다. 아비뇽 유수. 세계사 시간에서도 아주 비중있게 다뤄지는 중세 유럽의 사건이다.
사실 유수라는 표현이, 바빌론 유수처럼 마치 교황이 감금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지만, 사실은 황폐화된 로마를, 선출된 교황이 가고 싶지 않아 이곳 아비뇽에 머물기로 한 것부터, 7명의 교황이 약 70년 정도 머물게 된 기간이다. 영어로는 Avignon Papacy라고 하는데, 아비뇽 교황청 시대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용어 변경이 정말로 필요한데,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아무튼, 교황청 건물의 외관은 정말 화려한데, 내부는 많이 부실하다. 설명을 보면 원하지 않은 화재가 많았다고들 하는데, 건물의 장엄한 규모에 비해 내부가 소박하다 못해 텅 비다 보니 황량한 느낌 마저도 든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이 각 방마다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이 역사적인 공간을 바라보는데 조금 방해가 되었다. 또 이렇게 유명한 관광지에 설명은 어찌된 것인지, 불어로만 적혀있으니 참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건물을 둘러보고 옥상에 올라가니 아비뇽의 시내가 보인다. 성벽도 남아있는 게 마치 정말 중세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시내를 둘러보다가 식사를 했는데, 꽤 고급스런 프랑스 요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맛볼 수 있었다. 나는 오리 다리, 아내는 랍스터를 시켰는데, 랍스터가 갈려서 수프로 나오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프랑스는 미식의 나라라고 해야 할까. 상상하지 못한 음식이 많은 듯하다. 뭐 이것도 경험이라면 경험이다.
이후, 유명하다는 아비뇽 다리도 갈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다리를 간다는 걸 입장료를 내고 관람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성당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기분보다 더 이상한 기분이랄까. 다리는 온전치 않은데, 이는 전쟁 때문이 아니라, 여러차례 론강의 범람, 홍수로 인해 유실되었다고 한다. 사실 그렇다면 건축이 잘못 되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아비뇽 다리 관련된 음악이 원체 프랑스인들에게 유명하기라도 한지, 그런 설명도 있었다. 식견이 짧아 모두 알 수는 없었다.
그렇게 짧게 두 곳을 둘러보고 오후에 숙소로 돌아왔는데, 아내에겐 조금 무리한 일정이었던 듯하다. 아내는 쉬겠다고 했는데,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에너지가 넘쳤고, 다음날 비 예보에 또 한 군데를 가보고 싶었다. 하루에 도시 세 개를 보러 가다니,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참 대단한 한국인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