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과 생각

위대한 대중교양서에 대하여

이기적 유전자

by 송다니엘

읽기도 전에 선입견을 품은 책들이 몇 권 있다.

주관이 뚜렷하지 않던 어린 나는, 주변의 나보다 나이 몇몇 이들의 이야기를 그야말로 전적으로 믿는 경향이 강했는데, 그렇다고 실제로 직접 그 팩트를 찾아본다거나 그 오류일 수도 있는 생각에 대해 스스로 시험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흔히 말해 비판적인 사고가 결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에게 덜 의존적이고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가지게 되었는데, 이는 어떤 책을 읽을지에 관한 생각도 한몫했던 듯하다.


이 책과 나의 역사를 생각해본다.

적어도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은, 내가 생도 생활을 할 때도 (이제 무려 십수년 전), 많은 동기, 선후배들이 읽던 책이었고, 그들의 책장에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책이었다.

한 번쯤 봐볼 법도 했지만, (실제로 생물학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편도 한몫을 했겠지만) 내겐 이 책에 대한 선입견의 영향이 너무나도 과했다. 무언가 기득권이 이 사회의 힘을 가지게 된 경위를, 옹호하고 강화하는 논리로 무장한 책이라는 빨간 딱지가 내겐 찍혔다.

한 동기와 이에 대해 논쟁한 적도 있었는데, 그는 읽어보지도 않고 그런 소리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을 유심히 듣지 않았다. 이 책이 한창 떠들썩하게 언론에서 오르내릴 때도 손대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 군복을 벗고, 한때 부정한 사회에 대한 화가 나 살던 젊은이의 노여움도 예전 같지 않게 됐다. 누군가는 사회에 순응하게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감정보다는 이성에 움직이는 사람으로 점차 변화해갔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문의 길과는 완전히 멀리 떨어져 있다가, 독일에 오게 되면서 과학을 진정으로 접하고, 과학적인 사고를 시작한 것도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독일에 온 지 2년이 됐을 무렵, 고국에서 다시 독일로 출국하는 공항에 있는 서점에서 다시 이 책을 보게 됐다. 이젠 감정을 빼고, 과학으로서 이 책을 바라볼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그때로부터 2년이 지나고 이 책을 마무리했다.


처음 펼쳐 들 때만 해도, 학위 논문을 쓸 때쯤이었는데, 그때엔 이렇게 ‘언젠가 나도 대중 교양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지는 ‘내 논문도 이렇게 훌륭한 스토리라인이 있어야겠다.’라는 생각에, 논문 쓰기 전엔 꼭 끝까지 읽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생전 처음으로 제대로 쓰는 학위 논문에 그렇게까지 큰 희망 사항을 녹여내는 건 불가능했고, 책을 도저히 읽을 여유가 없었다. 이후에 학술지에 낼 논문 쓸 때에도 비슷한 생각으로 다시금 이 책을 봤는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과학이라는 게 그저 새로운 연구결과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줘야 한다는 취지만큼은, 이 책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해온 연구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게끔 도와주긴 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몇 가지 인상 깊은 내용을 생각해본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밈이라는 용어가 이 책에서 처음 쓰였다는 건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인간의 문화, 새로이 등장한 자기 복제자에게의 이름, 모방의 단위 개념을 담고 있는 명사: 위의 단어를 밈으로 줄이고자 한다.”


“유전자를 선택의 단위로 하는 낡은 유형의 진화는 뇌를 만들어 냄으로써 최초의 밈이 발생할 수 있는 수프를 마련해 주었다. 자기 복제 능력이 있는 밈이 등장하면서 이들은 낡은 유형의 진화보다 훨씬 빠른 독자적 진화를 시작했다. ... 유전자의 경우와 같이 여기서도 특정한 사본의 수명보다 다산성이 훨씬 중요하다.”


단지 유전자만이 개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겐 문화, 그걸 형성하고 확장하는 것으로 밈이라는 개념을 그가 제안했는데, 그것이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소비하게 된 셈이다. 그가 정말로 주창했던 밈이라는 개념이, 그가 제안한 개념처럼 현실화가 된 셈이다.


또, 아이에 대한 근연도의 측정 방식은 흥미로웠다. 결국 모성애가 특별해서 그렇다기보다도, 내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서 본인이 희생되는 것과 본인의 기대 수명 등을 고려해 아이를 위해 희생한다는 개념은 읽기 전에는 차마 생각해보지 못했을 테다. 전반적인 인류의 통념을 깨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쪽 분야에서는 이미 널리 받아들여진 생각인 듯 보이지만.


그리고 그가 설명한 게임이론이 평형이 자리잡는 내용은, 내가 그동안 해오던 수학적 최적화 내지는 머신러닝의 핵심적인 Gradient based method라든가, initial point가 얼마나 중요한지와 같은 부분들, 즉 정말 동떨어진 학문이라고 느껴졌던 곳에서, 똑같은 일종의 ‘진리’가 작용한다는 것에 흥미로웠다. 역시 학문은 어디선가 통한다고 하던가.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것이 생물학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것이 제일 인상 깊은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학문의 쓸모인데, 이 책은 그런 역할을 훌륭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진실이 꼭 사람들이 바라는 사실이 아닐지라도.


이런 관점에서 감히 나는 이 책을 정말 위대한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과학 교양서로서 이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책을 생각하리란 쉽지 않다.

또, 여러 학문의 분야를 대중들에게 정말로 쉽게 설명하고, 명료하면서도 실제 이론과 다르지 않게 설명한 부분은 참으로 감탄스럽다. 감히 비판하기 쉽지도 않겠지만, 방대한 내용을 다루려고 하다 보니 중복되는 이야기나, 다소 길게 설명된 부분들은 그다지 와닿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는 내가 너무 많은 텍스트들을 훑는 경향들이 생겨서 그런지도 모른다.


13년을 넘게 알아온, 나 개인에게도 큰 논쟁이었던 이 책을 이렇게 마무리하게 됐다. 사실 개인적으론 다른 논쟁의 책으로는 총균쇠가 있었다. 이 논쟁은 이미 7~8년전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었는데, 이건 시간이 더 걸렸다. 총균쇠와 다르게 이 책은 생도시절 이후, 내게 논쟁을 걸어오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과학자로서의 그의 말을 마지막으로 인용해본다.

“정치가와는 달리 과학자는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해도 된다. … 나는 한번도 과학자가 변덕쟁이의 오명을 입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나도 내 스스로의 오류를 틀렸다고 인정해본다. 살면서 여러번 느끼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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