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독 바다청년 Dec 02. 2021

이탈리아인과의 대화

이탈리아 역사. 지역감정

유난히 이태리 친구들과 잘 지내게 된다. 뭔가 통하는 데가 있다고나 할까.


축구 이야기가 나와서 역시나 2002년 월드컵 이야기를 해줬다. 4살밖에 안 됐을 때인데도 그 경기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신기하다. 본인의 아버지는 그날 경기를 보고 울었는데, 남자가 단 한 번 울어야 되는 날이 이날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심지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렸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나로선 스페인과의 경기는 몰라도, 이태리와의 경기에 그렇게까지 심판의 입김이 작용했나 싶다. 그들이 이탈리안이고, 내가 한국인이라 서로의 간극은 좁힐 수 없을 듯하다. 친구는 그래도 언더독이 신화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며, 한국이 그때 4강까지 올라간 게 정말 좋았다고 한다. 이태리가 진 것 빼고는.


밀라노에 산다고 하며, 밀라노 아래 있는 이태리는 다 남부 이태리란다. 재밌는 구분법이다. 밀라노인인 걸 자랑스러워한다. 이곳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을 보며, 이건 도시에 있을 수 없는 거라며, 이 동네가 시골이라며 불평한다.


사실 이런 밀라노인들의 다소 거만한 태도에 소위 ‘남부지방’ 출신 친구는 불쾌감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내게 Terrone라는 단어를 알려줬는데, 남부 이탈리아 출신의 사람들을 경멸하는 말이다. 지역감정도 있는 게, 이태리와 우리나라가 정서가 비슷하다고 했던 먼나라이웃나라의 설명이 새삼 떠오른다.


또, 이태리 친구는 지역감정의 뿌리가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반도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시작된 통일 이후,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왕이 각 지역에 동일한 경제 시스템을 적용하는 바람에 산업 기반이 부실했던 남부는 경제적인 기반을 모두 잃게 되고, 사람들이 다 거지가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당시엔 동네 불량배 정도였던 마피아들이 정부를 향한 민중들의 분노를 이용해 세력을 키웠다는 이야기다. 밀라노인이 이야기한걸 로마인이 동의하니 맞는 것으로 한다.


이후 마피아는 남부 지방부터 세력을 키워 엄청난 권력을 쥐고 사회 곳곳에 침투하게 됐는데, 60~70년대에 이런 마피아 세력을 상대로 이태리판 ‘범죄와의 전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너무나도 많은 뜻있는 정치인들이 죽었고, 결국은 정치계와 마피아 간의 일종의 휴전협정이 있었고, 그 이후엔 그만큼 큰 충돌은 없었다고.


재밌는 건 이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마피아가 지금은 예전만 하지 못한데 이는 젊은이들이 관심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마피아도 결국 일자리 부족을 겪고 있는 셈이다. 뜻있는 정치인도 하지 못한 일을 인터넷이 하고 있는셈이다. 인터넷의 순기능이라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마피아한테 밉보이면 집 앞에 머리카락 잘라놓고 가고, 집에 총을 쏘는 등의 경고를 한다고 한다. 영화 대부에 나올 법한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나는 무서운 동네구나 싶었다.


이탈리아가 또 흥미로웠던 점은 우리처럼 대학서열이 명확하게 나눠져있다는 점. 물론 긍정적인 부분은 아니지만, 그들이 대학교육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더불어 파스타에 대한 밀라노인과 로마인의 차이를 알 수 있었는데, 밀라노인은 파스타는 기본적으로 후추, 페코리노(치즈), 관차레(고기) 세 개에 여기에 토마토 소스를 부으면 아마트리치아나, 크림이면 카르보나라. 뭐 그렇게 6~7개를 부르는데 본질적으로 거기서 거기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를 로마인한테 얘기했더니 ‘걔가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밀라노 애들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 디스하는 걸 옆에서 보니 참 재밌다.


매번 식사대접을 하니, 본인들 모임에 나를 불러줬다. 고마운 일이다. 이태리 말을 따라하고 노래부르는 걸 기특하게 여기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식의 세계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