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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Dec 05. 2021

고국에서의 소중한 인연들

좋은 사람들

형과 누나, 나까지 모두 주한독일문화원 수강생이었다. 형은 그 당시 이미 베를린 소재 명문학교인 Hanns Eisler에 합격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출국을 못 하는 상황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으니, 다른 수강생의 처지와는 달랐다. 4달 수업을 같이 들었는데, 줌으로 수업을 하다 보니 실제로 얼굴을 본 건 뒤풀이 때 한 번 만난 게 고작이다. 사실상 끊어질 듯 말 듯 한 관계라고 해도 무방했다. 외국인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하니, “너 베를린 길거리에서 자는 거 아니야?”라는 농담도 했다. 여담으로, 이후에 누나도 동일한 학교에 합격했다.


그동안 내가 살던 세상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으니 굉장히 흥미롭다. 그 학교의 성악과의 경우 매년 10명 내외의 합격자 중에 한국인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점. 예컨대, 형이 들어간 해엔 절반이 한국인이라고. 밥심이 노래에 좋은 영향을 끼치냐며. 국뽕에 취해도 되는 부분이냐며 웃었다. 또, 누나는 1년에 한 명 뽑을까 말까 하는 반주과에 다니고 있다. 전체 재학생 4명 중 1명이라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둘 다 내겐 신계의 인물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아직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더 대단하게 느껴진달까.


형은 베를린 3대 오페라 극장에서 Gastsolist로 일하고 있다. 부끄럽지만 오페라 아는 곡이 투란도트와 돈죠반니, 마술피리 정도인지라, Vincero 할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흔쾌히 불러주었는데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동영상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마음에 담아두라고 했는데, 잘 때까지 계속 생각났다. 다음에 올 땐 오페라 공부를 조금 하고 와야겠단 생각이 든다. 또, 형은 얼마 뒤에 있을 축가 연습을 하는데, 나도 축가를 부탁할 형이 생겼구나 싶었다.


또, 많은 오페라 중 본인한테 맞는 스타일의 곡이 있다고 알려줬는데, 형은 모차르트 곡과 잘 맞는다고 한다. 실제로 경연대회에서 입상한 곡도 돈죠반니에 있는 곡이다.


이런 좋은 일들도 많지만 어려운 점도 많이 이야기했다. 모 대학에서 경연을 펼치면 심사위원이 대학교수이고, 그 제자가 상을 타게 되고, 아시안보다 독일인에게 상을 몰아준다고.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보는 내용이 실제판.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지 싶다. 어쩌면 아시안으로서 느끼는 건 한국에서보다 더 심할 수도. 독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바로 입상한 형이 얼마나 대단한 성악가인지 실감했다.


누나는 요리왕이다. 뭐 먹고 싶냐고 물어서 그냥 밖에서 먹겠거니 했는데, 자장면, 짬뽕, 탕수육까지 모두 만들어줬다. 피자도 만들었는데 이태리 애들보다 나은 듯하다. 우스갯소리로 누나는 여기서 식당 내도 잘 될 거라며, 베를린은 경쟁이 빡세니까 바이에른으로 가자고, 나는 분점 하나를 맡겠다고 했다.


형은 오기 전에 내게 한 가지 조건을 걸었는데, 재워주는 대신 축구를 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런 이유로, 황금 같은 토요일에 베를린 한인 조기축구회에서 세 시간 경기를 뛰고, 다른 구경은 하지 못했다. 베를린까지 와서 축구를 한 것도 웃긴 일이지만, 올 때마다 하게 될 듯하다.


형이 한국에 있을 때보다 살크업이 된 상태였다. 노래 부를 땐 지금의 몸이 더 편하다고 한다. 파바로티처럼 풍성한 풍채를 가지는 게 역시 성악가로선 좋은건가 싶다.


테너는 고음을 내야 되는 지라, 알코올이 안 좋다고 한다. 사실 형은 술을 잘 못하는데, 테너로선 축복받은 몸이다. 그런 와중에 오히려 베이스는 저음을 내야 되는 지라, 술을 먹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다고. 재밌는 이야기다.


집에 있는 피아노를 좀 쳤는데, 형은 본인보다 잘 친다며 칭찬해준다. 누나도 나보고 오래 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실은 내가 친 곡들은 중학교 때 마무리한 거라고 한다. 그래도 누나는 남고에서 한 학년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실력이었다고 칭찬해준다. 황송할 따름이다.


누나는 예전에 인천 대건고 음악 교사였는데, 정우영 선수의 담임이었다고. 그래서 정우영 선수를 잘 안다. 이렇게 프라이부르크 정우영 선수도 결국 한 다리 건너서 아는 게 되었다. 프라이부르크로 가게 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저녁을 먹으며 Andrea Bocelli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테마곡을 부르는 걸 보며, 형이 저걸 하고, 정우영 선수가 바이에른 뮌헨 선발명단으로 들어가고, 나도 직관했으면 좋겠다며 행복회로를 돌렸다. 그만큼까지 좋은 일이 실현되지 않더라도 10년 후가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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