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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Jan 23. 2022

십수년간의 입시와 시험의 굴레

2018년 10월. 오랜 고민 끝에 전역하고 유학을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그 이후로, 1년 가까이 그 목표를 위해,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했,,, 아니 않았다. 나름 인생공부라고 생각하고 여러 책을 읽긴 했지만, 뭐 직접적인 도움이 된 건 아니다.


그렇게 위기의식을 느껴 19년 7월. 새로운 보직을 가자마자 한달도 채 되지 않아 토플 학원을 다니기로 결정했다. 살면서 한 번도 토플 시험을 본 적도 없고, 이렇게 하다가는 유학을 못 갈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당직을 바꿔가며 2달 동안 화성에서 강남으로 학원을 다녔는데, 굉장히 힘들었다. 사실 야간 당직 서면 피곤해도 그 다음날 일어나서 가면 되니까 괜찮았는데, 주간 근무에는 오후 다섯시에 퇴근하고 7시까지 강남에 가야하니... 이건 뭐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다. 밥도 못 먹고 매번 늦게 도착해 첫 번째 수업을 통째로 날리는 게 일쑤였다. 운이 좋게도 같이 근무하는 팀장(중령) 분이 편의를 봐줘서, 교대하는 당직자가 오면 나만 5시보다 조금 일찍 나갈 수 있었다. 물론, 해병대였기 망정이지 해군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두달 동안 식빵식빵하며, 학원을 다니고 나니, 인생이 너무 피폐해서 이 노예 같은 삶의 해방을 위해 시험을 신청했다. 운이 좋게도 한 번에 대학원에 자격요건에 해당하는 점수를 얻어 그 이후로 영어시험이라곤 생각도 안 했다.


그게 19년 10월 13일. 2년이 지난 21년 10월 시험 점수가 만료됐다. 이 문제를 한국에 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한국에서 영어시험을 보고 독일에 가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 시험 점수가 필요할지 안 할지도 불분명했으니. 뭐 이 후과가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작년 9월 말, 이곳에 온 이래, 발품을 판 끝에 이런저런 석사과정에 대해 알게 됐다.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선, 영어 성적 기한 상관없이 인정해 준다고 해서 안 보길 잘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안 보길 잘했다며. ㅋㅋㅋ


문제가 되었던 학교이자 결국은 다시 지금 가려고 하는 학교는 작년에 입학 원서를 쓰고, 그런 온갖 소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료되었으니까 다시 보라고 한다. 음... 그걸 2주 전에 직접 메일 보내서 확실하게 컨펌받으니, 학교 시험이 임박한 와중에도 시험을 접수했다. 독일에서 토플 시험을 보게 된거다. 음... 집 앞에서 시험을 볼 수가 없어서 뮌헨까지 왔다. 집에서 두시간 거리에, 하.. 30만원이 넘는 돈을 결재했다. 거의 한 달 식비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기엔, 뭐하러 이렇게 전역 준비를 빨리 해서 영어시험도 만료되게 했냐고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다. 하. 뭐 어찌됐든 엎어진 일이니,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1주일 동안 후다닥 준비했는데, 역시 대충 준비한 후폭풍은 내가 지어야 하는 몫이었다. 읽기 지문을 풀다가 말려서 마지막 지문을 차분하게 풀지 못했다. 저번 시험엔 듣기도 만점이었는데 말하기 하는 놈이 거슬려서 몇 개 문제를 놓쳤다. 시험을 마치고 나니, 모의채점 결과가 나왔다. 망한 건 아닌데, 점수가 많이 아쉽다. 그래도 대학 갈 점수는 충족될 것 같은 생각이다. 뭐 잘 보는 것보다도 그 점수만 넘자고 생각했었으니..


내 인생에서 영어시험은 이제 끝일까?


생각해보면 나는 시험을 참 싫어했다. 인생의 제일 큰 시험이었던 수능을 말아먹었고, 많은 시험에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 그 이후의 몇몇 시험들은 운도 따라준 것 같은데, 이럴 때면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시험이라는 게 실력을 측정하는 것도 맞는데, 그 실력이 정말 그렇게 측정되는지는 의문이다.

따지고 보면 토플 만점 맞는 사람이 나보다 영어는 훨씬 잘할 거다. 당연하지. 근데 내 영어 실력은 분명히 향상된 것 같은데 점수는 왜 그럴까? 알 수 없다. 스펙에 목숨 걸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를 떠난 게 어쩌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됐든 자유의 몸이 되었다. 후련하다. 결과 나오기까지 기다려야겠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한다. 이러면서 내 성격상 신경 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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