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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Jan 02. 2022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연말연시

새옹지마

원래 이태리를 가려고 끊었던 기차를 타고, 예정대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갔다. 어차피 취소가 안되는 티켓이라 가는 김에, 새로 발급한 여권을 영사관에서 받기 위함이다. 오늘은 웬일인지 연착이 안 됐다. 업무 종료시간에 쫓겨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제 시간에 도착해서 좋아하고 있었거늘.. 당일 영사관 내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여 모든 업무가 종료되었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봤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 이건 무슨 신박한 경우인가.


집에서 이곳까지 오려면 최소 다섯 시간을 가야되거늘, 너무나도 허망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 연결을 시도하는데, 역시나 되지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위층에 올라가보니, 다른 업무를 보시는 분이 무슨 일 있냐고 여쭤보신다. 상황을 설명하니, 예약되어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취소 전화를 돌렸는데, 나 같은 경우는 고려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늘 점심 때 일어난 일이라, 정신없이 흘러갔다고...


물론 이해는 되지만, 세상 잃은 표정 짓고 있으니, 몇 가지 대안을 말씀해주신다. 옛날 여권을 제출하고, 사본에 영사관에서 여권을 보관하고 있다는 내용의 도장을 날인하고, 새 여권은 업무 복귀 하는대로 우편으로 보내주신다는 내용이 골자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러고는 고민하다가 멀리까지 왔는데 쾰른에 한번 가보기로 한다. 언제 또 와보겠냐는 생각에.


끝이 아니다. 나를 초대한 이태리 친구 두 명 중에 다른 친구마저 확진됐다. 예정대로 오늘 이태리로 갔으면 길거리에서 잘 뻔했다. 내가 그들을 만난 게 5일 전이니, 한국 같았으면 빼도 박도 못하고 자가격리다. 친구는 가기 전까지 매일 같이 검사하고, 음성 결과를 받았는데 어디서 걸렸나 싶다.


처음엔 이태리 친구가 확진됐다고 해서 그 친구만 걱정하고 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나또한 연관되어 있단 걸 늦게서야 깨닫는다.


나란 존재, 참 어리석다. 그들도 그 당시엔 음성이었는데 그때도 전파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동안 그런 사례가 많았으니까. 결국 고대했던 고국의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집으로 일찍 돌아가기로 했다. 모든 게 이해는 되지만, 또 막상 그렇게 되고 나니 내 처지가 또 불쌍하다.


이렇게 계획했던 일정은 아주 짧게 조정되었다. 어쩌면 나도 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나도 나를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거니와 지금 상황이 심각하단 걸 몇 가지 사례로, 피부로 느껴서랄까. 집에서 그냥 부스터샷 맞고 공부나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결국 새해를 Straubing에서 보내게 되었다. 기가 막힌 하루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는데, 또한 이처럼 다사다난한 연말이 있을 수 있겠나 싶다. 그래도 어제 오늘 행복했으니 그만이다.


돌아가기 전 마지막 사치를 부려보기로 한다.  Pr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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