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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과 생각

뉘른베르크의 재판

모순적 인간상

by 송다니엘

벌써 60년도 더 된 영화다. 2차 세계대전 독일의 전범자들에 대한 재판을 다룬 영화다. 근데, 대상자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히틀러, 괴벨스, 괴링과 같은 누가 봐도 명백한 유태인 학살을 주도한 인물이 아니고, 법조계 인사다.


이는, 12년간, 6백만에 달하는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에서, 이를 집행했던 이들이 본인들은 그저 명령, 시스템을 따랐을 뿐이라고 무죄를 주장한 데에 대한 기록일 수 있다. 나는 이보다 더 깊게, 모순적인 인간상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피고를 변호하는 독일 변호사는 추락한 독일의 자존심을 위해, 그리고 피고 중 존경할만한 인물에 대해 변론한다. 요약하자면, 피고는 나치에 의해 조국이 완전히 망가지고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나치가 더 심한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목숨을 걸고 자리를 지켰던 인물이라며, 그가 유죄면 독일 전체가 유죄, 독일이 재무장할 때 무기를 팔아서 이익을 얻었던 미국도 유죄, 히틀러와 협약을 맺은 바티칸도 유죄, 불가침 조약을 통해 폴란드 침공의 계기를 만들었던 소련도 유죄. 나치 정권이 전세계로 유대인에 대한 핍박하는 걸 선전했음에도 전쟁을 피하려고 눈감았던 세계 모두가 유죄라는 논리를 펼친다. 즉, 어느 누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과연 그만큼이라도 정의롭게 행동할 수 있겠냐는 거다.


한편, 피고의 변론도 울림이 있다. 본인이 침묵을 지키면 그의 변호인은 그가 행한 잘못된 판결을 국가를 위해서 한 것이라고 포장했을 것이고, 히틀러의 제국이 독일에 좋은 일을 한 점도 있다고 주장했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망가진 독일의 실낱같은 구원을 위해서라도, 고통스럽고 수치스럽더라도 본인이 유죄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본인은 죄없는 유대인에 대해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형 판결을 내려야된다고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또, 많은 독일인이 유대인 학살에 대해 본인은 가담하지 않았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고 이야기하지만, 죄없는 수많은 유대인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제 수용소를 끌려가는 걸 수없이 보았고, 이를 통해 수백만은 아니더라도, 수백명이 죽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을 것이며, 이에 디테일은 모를지라도.. 혹은 모른다면 이건 스스로 알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고 덧붙인다.


이는 지금 독일이 전쟁에 대해 사과하는 태도와도 같다. 어찌보면 과할 정도로, 전쟁 범죄에 대해 사과하고, 이를 잊지 않기 위해 교육하고, 수많은 기념물에 기록하는 태도.


미국의 판사는 결국 모든 피고에게 종신형을 선고하는데, 독일의 피고는 판사에게 개인적으로 대화를 요청한다. 본인은 단언컨대 수백만명이 이렇게 처참하게 죽을 것을 알지 못했다고 믿어달라고 한다. 이에 판사는 그가 죄 없는 유대인에 사형선고를 하는 순간, 그 모든 게 가능한 것이었다고 말하며 영화는 마무리 짓는다.


이 해묵은 영화를 왜 다시 꺼내냐고. 이는 우리 사회와 닮은 부분이 있어서겠다. 누군가는 본인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이고 깨끗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건 실제로 맞다. 상대방은 더욱 추잡하고 악행을 수없이 많이 저질렀을 테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깨끗한, 아니 훨씬 더 깨끗한 인물은 그럼에도, 본인 잘못이 밝혀지면 이에 대해 사과를 한다. 왜냐면 이것이 부끄러운 줄 알기 때문. 혹은 강변한다. 나만 아니라 쟤도 그랬는데, 쟤는 나보다 더 더러운데.. 억울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본인에 대한 변호를 열심히도 한다. 우린 그를 조금이나마 더 깨끗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죄가 지워지느냐.


그러면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 그 정도도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딨냐며. 너는 그 자리에 갔을 때 그렇게 청렴결백할 수 있냐고. 그 말도 맞다. 이렇게 쓰는 나 또한 결점이 많은 인간인지라,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적지 않은 잘못을 저지르고 살았다. 이는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만큼 크지 않은 잘못을 했을 수 있고, 혹은 운이 좋게도, 그런 일을 했음에도 이가 밝혀지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피고의 마지막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는 법정에선 본인이 유죄라며 양심고백을 하지만, 결국은 그가 좋게 생각한 미국 판사에게만큼은 모순된 말을 한다. 이는 도덕적인 면죄부를 받고자 했던 것일까. 다른 피고들과는 내가 결이 다르다는 걸 인정받고 싶은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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