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21세기 가장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합법적인 절차로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선 나라에 별다른 명분 없이 이를 침공하는 게 21세기에 가능한 일이었던가. 혹자는 이라크 전쟁, 20년간 이어진 아프간전부터,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중동 전쟁, IS, 발칸반도에서의 일들에 대해 꼽으며 그건 본질적으로 다르냐고 물을 수도 있다. 사실 틀린 지적은 아니다. 우린 흔히 선택적인 분노를 하고, 유럽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더 크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특히, 중동, 아프리카 내전에 대해선 원래 그랬던 것처럼 인식하면서.
그런 이유로, 적절치 않은 생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의 전면전은 내가 그동안 느꼈던 그 전의 전쟁들과는 분명히 다른 성격의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유력 대선후보 및 공영방송에서 이에 대한 망언을 하는 걸 보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한편, 스스로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정치지도자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었었는데, 그의 용기 있는 행동과 계속 싸우는 그 나라 국민들을 보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가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울 세계 시민들에게 입국 허가를 해준다는 조치를 보고, 예전에 조지 오웰,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여하고 이를 소설로 적었던 것도 기억해본다. 잠시 정신 나간 생각이지만, 나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있는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여권법상 불가능하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애초에 아나키스트나 세상을 바꿀 혁명가는 꿈도 꾸지 않았고 그럴 배짱도 없다만, 뭐 그랬다.
한편, 즉흥적으로 저번주에 조카를 보러 간다는 생각으로 한국행 항공권을 끊었는데, 코로나가 아니라 이것이 변수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 사태에 내 항공권이 취소되니, 마니 하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던 내게서 적지 않은 모순점과 죄책감까지 느꼈다. 매번 말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 그리고 정치인들을 보며 회의감을 느끼고 있던 와중에 나도 별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높은 확률로, 한국을 가게 되지 않는다면, 뭐할지 고민하다가 지도에서 우크라이나가 멀지 않은 걸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
이런 생각을 꼬리에 물고 하다가, 막연하지만 만약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돌아가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전쟁이란 건 있어선 안 되는 일이기에, 모름지기 정치인이라면 이를 억제하고 긴장 완화를 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 틀림없다.
다만, 유사시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지는 것이 정치인이 해야될 의무이고, 국민은 목숨까지 내놓고 싸우는 게 의무가 아니겠냐는 생각이 든다. 군복을 벗고는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멀지 않은 정상적인 국가가 얼토당토하지 않은 이유로 침략당해 전면전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불가능한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미치광이 지도자가 설마? 설마? 하면서 크림반도를 침공했고 지금은 전면전을 하는 것처럼, 또 어떤 미친 짓을 할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생각보다 제재가 강력하고, 그가 코너에 몰린 듯하다. 그도 전면전을 시작하기 전 여러 시나리오를 예상했겠지만, 잔악한 그도 상황이 터지기 전에 모든 걸 다 예측하진 못하지 않았겠나 싶다.
슬픈 사실은 이 와중에도 한쪽 젊은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고, 한쪽은 부녀자까지 나서서 본인들의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쪽이나 비극인 건 마찬가지다.
빠른 시일 내에 기적이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