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여행기: 섬진강과 지리산 자락.

가장 한국적인 곳에서

by 송다니엘


4년 반 전, 네비게이션에 지리산국립공원만 검색하고 제일 가까운 데를 가면 그곳에서 천왕봉을 오를 수 있겠거니 했던 무지몽매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 갔던 것과 참 많이 다르다.


“고래로 지리산은 삼신산의 하나로 알려져 신선들이 모이는 곳이라 여겨왔다. 그런가 하면 웅장하게 벌리고 높이 서있으니 깊게 서린 계곡도 많고, 온난한 남녘에 높이 솟아있으니 층층마다 다른 온갖 동식물도 무성하여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먹고 살기에 풍족한 부산(富山)이며 자연 생태계의 보고라고도 일컬어진다. 그런 풍성함과 장대한 기상이 어우러져 신령스러운 기운을 많이 간직한 것으로 여겨졌고 명산대천에 제사 지내던 신라시대 이래 가장 중요한 다섯산 중 하나로 중시되었다... 세상 잡사를 피해 맑고 신선한 것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도 있었지만, 한번 들어가 박히면 찾을 길 없는 수많은 깊은 골은 쫓겨 숨어드는 발걸음도 많았다.”


노고단에 올라 켜켜이 쌓인 산, 그곳에서 천왕봉까지 이르는 길, 그 권역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어느 산보다도 깊은 걸 느낄 수 있다. 이런 걸 생각하면 소설 태백산맥의 빨치산의 중심이었을만 하다.


화엄사. 국보와 보물이 가득한 사찰에 산수유와 매화, 완벽한 날씨에 한적함은 정말 행복한 기억이다.


각황전은 본래 중심인 대웅전보다도 더 멋지다. 조선 후기 숭유억불의 기조 속에서도 중건이 이뤄져, 임금이 정사를 보던 근정전 다음 큰 규모로 지어진 법당이다. 숙종 임금이 직접 현판을 직접 이름을 지어 내렸다고 한다.


각황전의 중창 이야기를 비롯해 많은 이야기는 흡사 성경,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와도 흡사한데, 이는 추후에 이런 이야기를 만든 이야기라고 생각하게끔 한다. 어찌됐든 그 당시에 이렇게 큰 건물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임금이 어떤 이유에서 간에 이 절을 좋아해서 그랬을텐데,어쩌면 임금도 이곳을 와보고, 지리산의 깊고 멋진 곳에 좋은 땅에 절이 있는 걸 보고 팍팍 밀어준 게 아닐까 싶다. 다보탑과 더불어 가장 완성도가 높은 탑으로 평가되는 사사자삼층석탑도 멋지다.


이내 산을 오르는데 아직은 조금 황량하지만, 푸릇푸릇함이 오기 전, 청명한 새소리와 계곡물 소리는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 왔다는 걸 느끼게 한다. 오랜만에 산에 오르니 꽤나 벅찼지만, 노고단에 올라 저멀리 지리산 반대편 끝까지 걸었던 그 당시의 내 모습도 떠올리고, 섬진강부터, 남부지방의 몇몇 산들을 보며 감탄을 한다. 역시 성삼재로 올라가는 것보단 힘들어도 아래에서부터 시작한 등산이 더 뿌듯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걸 하려고, 이것 때문에 내가 한국에 왔었지.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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