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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Jul 05. 2022

수도원 기행

뮌헨 근교 Andechs



뮌헨공대 가톨릭 공통체에서 수도원을 간다고 하여 이야기를 해놓았다. 순례 전날, 저번 주말에 놀러갔던 뮌헨 출신 친구 집을 먼저 갔다. 너무나 고맙게도  비 온다고 역에 차로 배웅하러 왔다. 정말 마음이 따뜻한 친구다. 친구는 음식 재료를 준비해놓고 내게 오늘 Schnitzel을 먹을 거라고 했다. 뭘 하면 되겠냐고 하니, 고기를 나무망치로 두들기라고 했다. 고기를 얇게 펴서 거기에 계란과 밀가루 반죽을 하고 구우면 끝이다. 나무망치는 전통 바이에른 집에는 있는 듯하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공부하러 간다고 하여, 나는 집에 있는 피아노를 밤 늦게까지 쳤다. 독일에서 조금 잘사는 중산층은 뮌헨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런 훌륭한 집을 갖고 있구나 싶어 부러웠다. 친구는 1년째 학사 논문을 쓰고 있는데, 이제는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다며 이야기한다. 아픈 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고 했는데, 괜찮단다. 마무리하고 인턴십을 여기저기 지원해서 되는대로 한 다음에, 지금 생각으로는 코펜하겐에서 석사를 하고 싶단다. 좋은 생각이라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날. 뮌헨 중심부에 있는 뮌헨공대 본캠퍼스를 향한다. 가톨릭 공동체 건물도 그곳에 있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건물이 괜찮았다. 도서관처럼 공부하기도 좋고, 피아노도 있단다. 다시 갈 일은 없겠지만.


Andechs. 뮌헨 중심부에서 S-bahn을 타고 종점까지 가면 언덕 위에 수도원이 있다. 호수 (Ammersee)를 끼고 있고, 그 호수에서 맥주를 만들어서 그런지 맥주로 아주 유명하다. 수도원에서 직접 운영하는 정육점도 있고, 양조장도 있다. 상업적으로 운영하는 음식점에가보니 Haxe 등 많은 육류와 이곳 맥주를 맛볼 수 있다. 그래서 한번 맛봤다. 그동안 먹었던 것과 뭐가 크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아마 여행객으로 처음 온 사람이었으면, 인생 최고의 맥주, Haxe라고 했겠지만 내겐 그냥 한끼였을 뿐 큰 감흥은 없었다.

수도원 가이드는 수사 신부님이 해주셨는데, 바이에른 특유의 억양 때문에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참 좋은 설명을 많이 들었다. 가톨릭 공동체에서 이를 안내하는 어머니 나이대의 여성이 중간중간 끼어드는 게 너무나도 거슬렸다. 본인이 말이 많다는 걸 안다면서도 그치지 않는 게 너무 힘들었다. 독일 사람도 이렇게 낄 때 못 낄 때 구분을 못하는 구나 싶었다. 그 분은 식사 중에 함께 온 학생들에게 독한 맥주를 한 입씩 맛보라고 하나를 추가로 시켰는데, 그게 마지막에 남아서 누가 마시겠냐고 하니 내가 먹겠다고 했는데, 원래 술을 잘 먹냐고 물어봤다. 뭐 그렇다고 하니, 본인이 아는 아시아인들은 술을 잘 못 먹는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길래, 아마 한국 사람은 술을 잘 먹을텐데 다른 나라 사람을 만난 것 같다고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본인이 많은 아시아인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라고 굳이 거기에 한 마디 더 보탠다. 그래서 그런 Stereotype은 오늘부터 생각을 안 하는 게 좋겠다고 했는데, 거기서 한 마디 더 보탰다. 뭐 나는 이미 이전부터 모든 걸 다 아는 것 같이 말하는 그 여성 분의 화법이 마음에 안 들었던지라 그냥 넘겼는데, 오히려 옆에 있는 캐나다 출신 학생이 나보다 더 어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했다. 뭐, 황당한 일이었다.




비가 오고 날씨가 좋지 않았던 지라, 호수도 제대로 못 보고, 수도원 내부의 몇 가지 건물만 봤다. 내부의 성당은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동네에 있는 성당부터 해서 너무 많은 성당을 봐왔던지라 이것만으로는 큰 감흥을 느끼진 못한다. 흥미로운 건 이곳의 공작(Duke)이 베네딕토회 수사들이 일을 열심히 하는 걸 알고, 이들을 고용해서 이곳의 땅을 갈게 했던 게 이 수도원의 시작이라는 점. 수도원의 역사도 들었는데, 맥주 때문인지 별로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런 단체관광이 별로 와닿지 않았달까.


독일에서 수도원을 가게 된 건 참으로 뜻깊은 일이었지만, 앞으로는 혼자 가야겠구나 싶은 생각을 많이 한 하루였다. 뮌헨공대 본캠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역시나 성당 활동을 많이 하는 친구들은 사회성이 떨어지는 친구들이 꽤 많다. 뭐 이마저도 편견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 그래도 잘 어울리고 깊지는 않은 대화를 여럿 나눴다. 나를 재워 준 뮌헨 친구는 본인 집에서 자전거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수도원 가서 맥주 먹고, 호수 따라 자전거 타고 수영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곳이다. 한번쯤 가볼만 한 곳이랄까.


왜관수도원과는 같은 베네딕토회지만, 다른 분원이어서 아마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것 같지만, 고이삭 신부님도 그곳을 잘 알고 있었다. 신부님은 그곳 맥주가 독일 최고의 맥주라고 생각하신단다. 나는 뭐 모르겠지만 무튼 덕분에 신부님과 연락을 했고, 이탈리아 여행 계획이 확정되었다.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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