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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May 19. 2022

독일도시 답사기: 베를린 II


어떠한 연유로 베를린행 기차를 알아보는데, 기차값은 왜 이렇게도 올랐는지. 전쟁의 여파 때문이 아니겠는가.


오랜만에 집 떠나 멀리 가니 기분이 좋다. 4주만인가. 친구들과 맥주 축제를 위해 떠난 건 번외로 친다.


베를린에 도착하기 전, 잠깐 머물었던 뉘른베르크. 참 좋으면서도, 혼자 굳이 방문할 일이 있을까 싶은 생각도 함께 들었다. 한번이라도 방문해 본 도시는 뭔가 흥미가 떨어진다고나 할까. 이는 베를린도 마찬가지. 새로운 장소를 가지 않고서는 뭔가를 알아간다는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그렇게 베를린에 도착했다. 우리 동네는 너무나도 더웠는데 여긴 쌀쌀하다. 분명히 같은 나라인데 멀긴 멀구나 싶었다.


베를린의 다른 모습들.

East Side Gallery부터 Kreuzberg까지 걸어간다. Wind of Change를 여러번 반복해 들었다. 혼자 분단되었던 베를린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큰 감동을 느낀다. 그리고는 내가 좋아했던 베를린의 중심부, 관광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힙한 베를린을 느껴본다. 그곳에서 Spree강을 따라 쭉 걷는데 강가의 또다른 마켓이 있다. 강가에 앉아 맥주를 먹는데 기분이 참 좋았다. 소확행이랄까.


그리고는 Hackesher Markt에서 조금 위쪽에 있는 또다른 상권을 찾아가본다. 세련되고 맛집이 꽤 많다. 여느 국제적인 도시스러운 느낌이다. 그곳에서 걸어서 Mauerpark도 가본다. Mauer 독일어로 벽이란 뜻이다. 원래 장벽이 세워졌던 곳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본다. 공원 위쪽에 그라피티가 가득찬 저 벽이 남아있는 벽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동서를 갈라놓았던 장벽이 위치했던 곳에, 이젠 사람들이 모여 고기를 구워먹는 모습을 보니, 우리의 DMZ가 그렇게 될 날이 과연 올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낮엔 역사박물관을 갔다. 상설전시관은 하지 않고, 특별전시를 했는데 Wagner에 관한 전시가 제일 흥미로웠다. 19세기 초에 태어난 그가 독일 민족주의의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그의 그런 사상이 히틀러까지 미치게 되었다는 점이 나로선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의 오페라 중의 하나인 니벨룽겐의 반지가 민족주의를 위해 신화를 끌고 와서, 독일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의 음악은 위대하겠지만, 그의 사상만 큼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생각하며, 그는 본인의 작품이 수백만, 천수백만의 목숨을 잃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할 거라는 걸 그는 생전에 알았을지, 그는 그러면서도 독일의 민족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을지...


물론, 이건 그의 잘못만은 아니다. 나폴레옹에 의해 갈기갈기 찢긴 독일이 프로이센에 의해 통일이 되어 유럽 최대 강국이 되기를 본인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 그러지 않았겠는가. 어찌됐든 도덕이라는 것도 시대, 개인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서 손가락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나의 생각도 후대의 사람이 보기엔 부도덕하고 맞지 않은 것일 수도 있으니.


한편, 나는 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프로이센부터 히틀러의 제3제국까지 이어진 역사를 철저한 자기반성의 시점으로 바라보며, 프로이센의 역사, 민족주의의 흔적을 지우려고 했다고만 생각했거늘, TIergarten의 승전기념탑을 보고 그 생각을 바꿨다. 물론 멀쩡한 기념탑을 없애야 한다는 게 아니라, 기념탑 내부에 있었던 전시에 이런 흔적이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뭐, 그러면 있었던 역사까지 다 지워야 되는 건 아니지 않겠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래야 된다는 게 아니고, 그런 줄만 알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본다.


———

약속 시간이 많이 남아서, 주변 상권의 가게들을 하나둘 둘러봤다. 보면서 괜찮은 옷이 있음에도, 돈이 없어서 살 수 없다고 혼자 한탄하다가, 작년 10월에 봤던 옷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어 그 매장을 가본다. 역시나 물건은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샀다. 220유로. 작은 돈은 아니지만, 예전 같았으면, 이 옷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면 고민도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 나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 내 신세가 처량하기도 했다. 어쩌겠나. 내가 원하는 것처럼 완전히 여유로울 수는 없는 노릇인 걸.


사고 나서도 사는 게 맞았던 걸까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다음날 아침, 이를 입으려는데 잘 샀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에 들었던 거다.


가게 점원이 혹시나 사이즈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바꿔준다면서 베를린에 사냐고 해서, 저 멀리 바이에른에 산다고 하니, 바이에른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나는 너가 알 수 없는 동네라고 이야기했는데, 본인은 뮌헨에서 왔다며 말해보란다. 그러고는 또 어디서 왔냐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 어디냐길래 넌 알 수 없을 거다 했더니, 놀라지 말라고, 본인이 한국에서 1년동안 어학연수를 했단다. 한국에서 소주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많다고 하여, 전형적인 한국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 예전보다 훨씬 더 한국을 더 잘 알고, 종종 한국에 살다온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낀다. 좋은 일이다.


돈이 없는 관계로 호스텔에 묵었다. 7년만인가. 임관하고 나서는 여행 갈 때, 호스텔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좋은 추억도 꽤 많았지만, 같이 자면서 불편했던 기억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기 때문. 나름 호스텔 중에서는 괜찮은 곳이었다. 룸메이트가 있길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이태리에서 왔다고 한다. 역사학 전공이라는데, 한국에 정말 가보고 싶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이야기를 하더니, 이순신은 정말 천재 중에 천재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아는 이순신의 썰이란 썰은 거의 다 풀었다. 나는 군사적인 천재가 명예와 충성심까지 갖춘 사람은 역사에서 찾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폴레옹, 카이사르, 등등. 본인들의 욕망도 크지 않았냐. 이순신만큼 겸손한 천재는 찾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친구는 그 친구는 무척이나 감동받은 눈치였다. 나는 한국에 가게 되면, 명량에 가보던가 했다. 물론, 명량에 볼 건 없다고 해줬다. 갑자기 그러니까, 본인 고향 주변에 칸나에라는 곳이 있는데, 그 동네엔 아무것도 없는데, 엄청난 전투가 있었던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물론 알지 하면서 한니발이 로마를 박살낸 곳 아니냐 하면서, 로마사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고는, 로마가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미국이 지금의 초강대국으로 유지할 수 있는 건 해군력 떄문이라길래, 너가 제해권이라는 개념을 아는구나? 하고 웃었다. 젊은 역사학도가 나름대로 서양사뿐만 아니라, 여러 역사에 대해 관심 있어하는 모습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다른 하나의 룸메이트는 스위스에서 왔는데, 현재 드레스덴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기차 타고 왔냐고 물으니, 보스가 주말마다 차 쓰라고 빌려준다고, 그거 타고 왔다고 한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보스 아니냐며 부럽다고 했다. 이태리 친구는 스위스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하여, 그는 어떻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나라를 안 갈 수 있냐고 타박한다. 그러니, 이태리 친구는 나중에 루가노에 가볼 생각이라고 하니, 거긴 스위스가 아니란다. 스위스에서 이태리 말 쓰는 칸톤은 무시하는 거냐며, 자기들끼리 열띤 본인 나라 자랑을 늘어놓는다.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이 있다. 멀리 떠날 때면, 가끔은 눈살이 찌푸려지고, 곤란한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좋은 일이 있고, 좋은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다. 세상에 대한 이해도 많아지는 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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