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클럽
잔디구장이 보여서 그냥 무작정 찾아갔더니 이틀 뒤에 오라 해서 찾아갔다.
리얼 게르만족 밖에 없다. 금발에 키는 큰 것이 피지컬이 다 좋은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해보였는데, 직접 붙어보니 거칠다.
⠀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데, 끼어들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한두명이 Servus라며 인사를 건넨다. 이윽고 훈련하는데. 트레이너가 뜀박질을 꽤 시킨다. 끝나고 나니, 패스 연습을 특이한 방식으로 하는데, 다른 말은 모르겠고,
Weiter Weiter, Bewegen und Pass 등만 들린다.
대충 계속 진행해라. 패스하면서 움직여라.
뭐 그런 내용이다. 빨리 안 움직이면 소리 지르고, 무튼 빡세다.
⠀
5만 남짓의 조그만 소도시에 축구 클럽이 몇 개 있는데, 그 클럽 중 하나인 이곳에선, 어린 아이부터 청년까지 나이대별로 구분해서 훈련을 진행한다. 아직 나한테 돈도 안 받은 걸 보면, 클럽 회원비는 아주 싼 것 같다. 거기에 훈련해주는 사람들도 꽤 많으니, 이건 세금이 아니고선 운영될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독일 사회체육이 얼마나 좋은지 실감하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축구를 하니, 월드컵 트로피를 들었구나 싶다. 독일에서도 전설적인 축구선수 차범근이 왜 독일 갔다 와서 차범근 축구교실을 만들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비단 축구뿐만 아니라,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좋다는 점. 생각해본다.
⠀
같이 공을 차기 전까진, 그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공을 몇 번 차고 나니 다가온다. 축구는 만국 공통어랄까. 이름을 물어봐서, 원선이라고 하니까 못 알아들으면서 갑자기 손이라고 한다.
⠀
그래. ‘손 해라’. 했더니 “흥민 손!” 하면서 자기들끼리 신났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좋아하면서 뭐라고 더 말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어서 그냥 웃었다. 결국, 나는 그들 핸드폰에 Son이라고 저장됐다. 뭐. 손흥민이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가 토트넘을 떠나 바이에른 뮌헨에라도 오게 되면 더 좋은 일이 아닐까…
⠀
일요일은 독일인들에게 축구를 하는 날이다. 이 작은 도시에만 축구팀이 여럿이다. 내가 속하게 된 구단은 1군은 독일 8부리그, 2군은 10부리그에서 리그전을 진행한다.
⠀
이 작은 도시에 모일 사람은 다 모인 듯하다. 가족 단위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눈에 띈다. 맥주를 들고 본인 팀을 응원하는데, 판정이 마음에 안 들면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다. 8부리그의 열정이 이정도 일 줄이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
오늘 비로소 독일 축구협회로 보낼 클럽 입단 서류를 작성하는데, 다른 것보다 가격이 눈에 띈다. 반년에 일반인은 40유로, 심지어 학생은 24유로. 1달에 6천원을 내고 구단에서 하는 모든 경기를 뛸 수 있고, 훈련까지 받을 수 있다. 나로서는 정말 문화 충격이었다. 클럽 관계자는 축구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할 수 있게 가격이 낮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번에도 생각했지만, 실제로 피부로 느껴보니 기분이 묘하다.
⠀
우리나라에도 아마추어 리그가 있다. 다만, 일반인이 접근하기엔 대중적이지도, 친근하지도 않은 편이다. 물론 내가 그렇게까지 노력하면서 찾아다니지도 않았고, 실력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런 거에 비하면 이렇게 허들이 낮다는 점이 참 좋다.
⠀
먼저 독일에서 학위과정을 했던 지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독일은 약자들에 대한 사회적 복지가 정말 잘 되어 있는 나라다.”
꼭 뭐가 옳다 그르다를 떠나, 공부하고자 하면 학비도 없고, 운동하고자 하면 거의 무료로 운동할 수 있고, 의료보험으로 거의 모든 게 보장할 수 있고, 정말 하고자 하기만 하면 많이 누릴 수 있는 점이 좋다.
⠀
1주일이 지나고, 독일 축구협회에 등록됐다. 물론, 분데스리가는 아니지만, 뛸 수 있다니 재밌는 일이다. 경기를 뛰고 싶으면 매주 있는 두 번의 훈련과 일요일 거의 하루를 할애해야 한다.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그냥 즐기면서 할 뿐이다. 1군은 8부리그, 2군은 10부리그 경기. 8부리그를 보다가 10부리그를 보니까 할랑해보인다. 압박의 강도가 다르다고나 할까. 막상 뛰면 다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