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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과 생각

탈모와 진화론

세계인의 걱정거리

by 송다니엘

이곳 친구들 다 나보다 다섯 살은 어린데, 벌써 머리숱이 없는 친구들도 꽤 있다. 어떻게 먼저 이야기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너 위험해 보이는데?"하고 놀렸는데, 민감한 문제라고 발끈한다. 나는 서양인들은 워낙 머리를 미는 사람이 많아서 우리처럼 머리에 신경을 안 쓰는 줄 알았다고 했는데,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만 탈모약 먹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지금 생각해보기를, 두 가지 이야기가 생각난다. 하나는 아버지가 머리 때문에 검은콩을 의식적으로 많이 먹는다는 사실. 외모에 무관심한 줄 알았는데 수십년 간 검은콩을 먹는다는 사실이 너무 웃겼다. 그래서 동 나이대에 비해서 머리가 많이 남아있는 걸까?


또 하나는 해병대에서 만났던 나의 팀장. 팀장은 머리가 거의 없었는데, 탈모 이야기를 시작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끝없이 이야기하곤 했다. 매번 반복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탈모 유전자가 우성 유전자이기 때문에 인류가 진화를 거듭할수록, 즉 세대가 지나면 지날수록 인류는 모두 탈모가 될 것이라며 탈모가 아닌 사람은 진화가 덜 되었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래서 나는 진화가 덜 되어도 좋으니 탈모 안 될 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서 진화가 더 되셔서 좋다면서 왜 탈모약은 드시냐고 물으니, 세상을 앞서가는 건 항상 힘든 일이기 때문에 먹는 거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매번 자기 머리가 예전보다 풍성해진 것 같지 않냐고 팀원들에게 묻곤 했었다. 저렇게 신경을 많이 쓰니, 자기합리화적인 논리까지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으면 아마 재밌어하지 않았을까.


관리는 빠지기 전에 해야 한다며, 빠지고 나서 조치하면 늦는다고 했었던 게 생각난다. 유난히 해병대 사람들이 머리가 많이 없는데, 이는 맨날 고무보트를 머리에 이고 다녀서리라고 생각했던 것도 떠오른다.


그보다도 훨씬 어린데 머리가 더 없는 서양인들을 보니 또 여러 생각을 해본다. 그들이 우리보다 유전학적으로 더 진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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