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감성에 '퐁당' 빠지다 12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

by 유선미

<사월의 비처럼>


하얀 커튼처럼 뿌연 하늘. 기어코 '후드득' 빗방울 소리가 들린다. 며칠을 그렇게 고집스럽게 덥더니, 하늘은 끝내 비를 내어 놓는다. 이 비가 그치면, 더 큰 무더위가 찾아올 거라는 거도 알고 있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계절의 법칙이다.


여기에서는 비가 내리면, 주로 뭉쳐서 덩어리로 쫙쫙 쏟아진다. 시원한 소리, 크고 청량하다. 그 사이로 나무들이 같이 이리저리 춤을 춘다. 나는 그 순간, 숨을 고른다.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며 빗소리와 함께, 잠시 멈추어 세상을 본다.


어젯밤, 나는 메시지를 보내 버렸다. 짧고 간결한 문장이었다.

'이 시는 당신께 드려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버리세요. Good-bye.'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다가 드디어 완성된 시, 짧은 메시지를 쓰고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마지막 Good-bye, 그 단어로 나의 마음도 잘라내었다.


시를 일기장에 정성껏 손글씨로 쓴 뒤, 사진을 찍었다. 그 시는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쓰였으니, 앞으로 공개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시를 받고, 안 받고는 수신자의 몫이니, 이제 내가 하는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너를 혼자 두고, 나만의 시간을 원했던 나.


"시가 완성되면 나에게 보여주는 거 잊지 마."
"응, 꼭 그럴게!"


어쩌면 나는 아주 이기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 시를 보내면서 깨달았다. 시를 보낸 이유는 그와의 오래전 약속이었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그가 나를 영원히 잊지 못하게 하려는 내 욕심이었다. 내가 끝까지 그의 기억 속에 남을 방법.


서서히 잊어가겠지. 함께 웃었던 날들도, 같이 꿈꾸던 행복도 말이다. 나는 오직 한 사람, 그를 위해 시를 썼다. 그는 그 시에 갇혀, 영원히 자유롭지 못하길 바란다. 그래, 나는 이기적이다.


끝없는 길을 가는 동안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중 나를 가장 많이 울게 했던 사람은,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아니지만,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르고,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도 다르다. 나의 이기적인 마음도, 결국 그 많은 선택들 중 하나이다. 어설프게 익어버린 망고의 맛처럼, 달달함을 원했지만 먹어보면 밍밍하다. 떠나보내면서 '잘 지내, 행복해.' 이런 드라마 속에서 나올법한 말 대신, 시 한 편에 꾹꾹 눌러 담아 보낸 덜익은 결말.


저녁까지 계속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먼지와 더위가 비에 씻겨 나가듯, 얽혀있는 나의 욕망과 열기도 떠내려 갈지도 모르니까. 내 마음속 후덥지근했던 사월도 조용히 지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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