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선 (feat. 아이)
-꾸까꾸까-
이 세상에서 아이와 나만 아는 단어.
비밀의 언어가 생긴 다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나는 아이가 ‘꾸까꾸까’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묘하고도 행복한 감정에 휩싸인다.
나와 아이 사이에만 있는 특별함이 어딘가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서.
혹시라도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우리의 관계가 흩어질 때면 이 언어가 우리를 안아줄 것만 같아서.
평생 '꾸까꾸까'라고 불러주면 좋겠을 내 바람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더 이상 이 단어를 쓰지 않을 것이다.
나를 넘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단어를 써야 하니까.
아이의 언어 세계는 우리 모두가 합의한 언어들로 가득 차 '꾸까꾸까'와 같은 나와 아이만 아는 단어는 조용히 사라져 버릴 것이다.
표현하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나 ‘생각’을 어떠한 매개를 이용하여 타인이 알 수 있도록 표현해 내는 것은 실로 굉장한 일이다.
특히나 ‘꾸까꾸까’처럼 우리 둘만이 아는 언어를 사용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마음이나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이의 마음이나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특히나 모든 소통을 '울음' 하나로 표현하는 시기의 아이를 볼 때면 더욱 그렇다. 아이의 머릿속 보이지 않는 생각이나 감정의 근간이 되는 마음이 바로 보인다면 육아가 한결 수월해지지 않을까.
아이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가장 적합하고도 유사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이용하여 표현할 수밖에 없기에 ‘무언가’가 의미하는 바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아이 사이에,
특히나 ‘꾸까꾸까’처럼 오직 우리 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는 게 다행이면서도 감사했다.
시간이 흐르면 아이는 ‘꾸까꾸까’ 대신 ‘미끄럼틀’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언제인지 모를 그 순간이 오면,
아이가 점점 성장하고 있음에 대견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헛헛해진 마음에 살며시 말해 볼 것이다.
“우리 꾸까꾸까 타러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