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하게 살자

나의 시선 (feat. 나)

by 해봄





-찐-하게 살자-






1년 전, 정확히는 아이가 300일쯤 됐을 때의 일이다.

“여보, 혹시 어디야?”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쉬이 그칠 것 같지 않은 울음소리였다.

한창 걷고 있던 발걸음을 멈췄다. 집에서 나온 지 막 20여분이 지나던 터였다.


오후 8시 30분. 아이를 재우고 이제 막 운동을 나온 참이었는데 밤잠을 자던 아이가 깨서 엄마를 찾아 울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이 날은 출산 후 처음으로 운동을 나온 날이다.


남편의 목소리 너머에서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빨리 집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아이가 밤잠을 자다 깨서 울 수도 있고,

곁에 아빠가 있으니 아무리 울어도 어느 정도 울다가 다시 잠들 수 있으니 별일 아닌 듯 운동을 이어 갈 수도 있지만,


초보 엄마는 자다 깨 엄마를 찾으며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순간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얼른 집으로 가서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남편에게 얼른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는 전속력으로 집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힘을 끌어올려서,

내가 뛸 수 있는 최대한의 빠른 스피드로 집에 도착

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분명 뛰고 있었는데, 나를 앞질러 뛰어가는 많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자니 내가 지금 뛰는 건지,

걷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출산하고 처음으로 뛰는 순간이었다.


예전처럼 가볍게 뛰어지지 않는 내 몸 상태를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


그래도 뛰어야만 했다.

뛸 때마다 무릎은 삐그덕 거렸고, 발을 내딛을 때마다 앞으로 가기는커녕 땅 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초록 불을 깜박거리는 신호등을 보며 얼른 건너가서 집에 도착하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다르게 내 몸은 말을 듣지 않았고 이내 신호는 빨간불로 바뀌었다.


마음이 타들어갔다.

아이가 너무 울어서 큰 일 나면 어떡하나.

남들이 들으면 '그 정도 울어도 괜찮아.', '아이가 조금 운다고 큰 일 나지 않아.'라고 말할 테지만 이 모든 상황에서 해결의 열쇠를 쥔 사람은 오직 '나'인 것만 같아서 애가 탔다.


남들 보기엔 그저 빠른 걸음정도의 속도였겠지만, 나는 최대한으로 뛰어 집에 도착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집은 조용했다.


남편에게 들어보니 아이는 계속 울다가 방금 막 잠이 들었다고 한다.

잠들어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갑자기 온몸의 힘이 쫙 빠졌다.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아이는 아주 잘 자고 있었는데도.


아이가 얼마나 울다가 잤을지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아이가 밤잠에서 깨지 않고 푹 잤으면 더 좋을 텐데 왜 깼을까 싶기도 하고.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도 너무 당황했는데, 바로 옆에서 달래 지지 않는 아이를 지켜본 남편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싶다가도,

아이가 울 때 나 대신 남편이 아이를 잘 달래 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도 들고.


내가 아이를 재워두고 운동을 하러 나가지만 않았으면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 이 모든 게 내 탓처럼 생각되다가도,

매일도 아니고 오늘 처음인데. 하루도 아니고 한 시간도 아니고 20분도 나를 위해 쓸 수 없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고.


몸은 또 왜 내 맘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지.

출산 후,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에 걷기 운동이라도 시작해 본 참이었는데 생각보다 더 충격적인 나의 몸 상태에 바늘 끝에 스친 풍선처럼 펑하고 눈물이 터져버렸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육아하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한숨 돌리며 나간 시간이었는데,

운동하는 시간도 나에겐 사치였으며,

초가을 저녁, 선선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마주하며 걷는 시간은 아직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언제가 되면,

나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쓸 수 있을까.

나를 위한 시간이 존재하는 때는 언제 올까.


어느 것도 계획할 수 없는 일상.

다른 사람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한 조각도 쉽게 허용되지 않는 세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초긴장의 상태.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즐기는 것이다.

잠깐의 여유, 소소한 일상에서 비롯되는 행복함을 만끽하는 것.

다시는 이런 순간이 없을 것처럼 흠뻑 취하는 것.

온전히 집중하며 찐-하게 보내는 것.


짙은 농도로 살아가자니 어쩐지 마음은 가벼워진다.




찐-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