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선 (feat. 나)
-너, 그대로네?-
아기가 10개월쯤 되던 달.
대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결혼을 했다.
장소는 창원. 나는 서울.
차로 가면 4시간 30분, 기차 5시간 30분, KTX 2시간 40분이다.
아기가 없을 때야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이 없었지만, 당시 나는 모유수유 중이라 외출이 어려웠으며 한다 하더라도 3시간을 넘기지 않고 돌아와야 했다.
KTX를 이용해서 최단 왕복 시간을 따져 봐도 족히 10시간을 넘는 거리.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니 무조건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KTX를 탔다.
결혼식장에는 이미 다른 동기들이 많이 와 있었다. 그날 주인공이었던 친구는 동기들 중에 좀 늦게 결혼을 한 편이라 결혼식에 온 동기들은 이미 아빠, 엄마가 되어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났지만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오랜 시간 연락 한번 못했지만 방금 전 이야기를 나눴던 것처럼 우리는 자연스러웠다.
“너, 그대로네?”
기분 좋은 첫인사였다.
대학 시절, 방학이 끝난 개학날 이러한 인사를 들었다면 분명 발끈했을 테다.
‘방학 동안 죽을 듯이 운동했는데 살 빠진 거 안 보이니?’, ‘나 머리 새로 했는데 분위기 바뀐 거 모르겠니?’
이를테면,
“더 멋있어졌네?”
“더 예뻐졌네?”
정도의 인사는 돼야 기분 좋게 다음 대화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 시절에 ‘그대로’라는 단어가 주는 분위기는 정확히도 다른 의미였다. 변한 모습이, 달라진 분위기가 칭찬으로 들리던 때였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날은 어째서인지 ‘너, 그대로다’라는 말을 들었는데도 미소가 번졌다. ‘변함없이 그 모양으로’라는 단어의 뜻이 나에게 그대로 스며드는 느낌이 좋았으며, 내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새벽에도 수시로 깨는 아기로 인해 빨갛게 충혈된 눈과 집에서 나오기 직전까지 아기를 보다 KTX에 타서야 허겁지겁했던 화장의 부끄러움이 감춰지는 것 같아서.
아기를 안느라 자꾸만 앞으로 말리는 어깨와 어딘가 모르게 달라진 내 체형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은 듯 반듯해진 것만 같아서.
스무 살의 그때처럼 생기 가득하고 해맑게 웃는 내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비치고 있는 것 같아서 충분히 기분 좋아지는 인사였다.
“넌 예전처럼 그대로네.”
예전처럼?
예전의 나.
예전의 우리.
이십 대 초반에 만난 우리들.
시답지 않은 말장난에도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고, 작은 원룸 방에서 옹기종이 모여 잠들어도 불편함을 몰랐으며, 단체로 지각을 해도 함께이기에 든든했던 동기들이다.
우리에게 아빠, 엄마의 역할은 없었고 ‘아기’란 말은 한 겨울에 피어난 꽃송이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지금의 우리들은 어엿한 엄마가 되었거나 아빠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사소한 장난거리를 찾아 그게 별 일 인양 큰 소리로 웃고 있었고,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수다 속에서 우리만의 시간이 만들어졌으며, 그 안에서 우리는 한 명, 한 명이 오롯이 주목받는 주인공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잠시 주인공에서 벗어나 조명 밖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보고 있는 조명에는 온전히 아기만이 존재해서 ‘나’ 자신이 조명 밖으로 벗어난 건지 혹은 조명이 꺼진 것인지 조차 구분 할 수 없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사실은 어느 순간이고 늘 나 자신에게도 계속해서 조명은 비치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참 많이 변한 것 같지만 여전히 그대로였다.
“넌 예전처럼 그대로네.”
좌충우돌 평범한 초보 엄마의 실전 육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