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의 헤어짐을 준비하는 마음
우리 할머니는 98살이다. 한국 나이로.
윤석열 정부가 만 나이로 제도를 바꾼 후, 올봄 돌아온 할머니의 생일에 한 살을 되돌릴까 했지만 할머니가 질색을 하며 싫어하셨다. 한국 나이로 하라고.
할머니가 '너무 살았다', '이제 그만 죽어야지'라고 할 때마다, 나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지금까지 산 게 억울한데 100살은 찍어 봐야지!"
그때마다 할머니는 질겁을 하였고, 다시 나이를 하나 되돌리면 그만큼 더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 할머니는 몇 달 전까지, 아니 불과 석 달 전만 하더라도 매일은 아니지만 컨디션이 괜찮은 날에는 양손에 지팡이를 하나씩 짚고는 2층 계단을 내려가 동네 놀이터에 가서 다른 할머니들과 낮 동안 바람도 쐬고 얘기도 하고 노닐다가 집에 돌아오시곤 했다.
그런 할머니는 지금, 약 두 달 만에 완전히 다른 인격이 되셨다.
병상에서 할머니가 하려는 것을 못하게 손을 잡으면 두 눈을 크게 부릅뜨면서 나에게 큰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신다.
아니, 할머니는 할머니를 잃어버렸다.
할머니의 눈동자는 나를 보고 있는데, 할머니는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할머니는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움직여도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할머니 왼쪽 귀에 대고 '내가 누군지 알아?' 하면 고개 끄덕, '나 보여?' 하면 고개 끄덕, 그걸로 할머니가 나를 인지하고는 있다고 느낀다.
할머니와의 작별을 예감하며, 그동안 나는 왜 할머니와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인지, 왜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는지 큰 후회가 되었다. 할머니는 지금까지처럼 그냥 계속 거기에 계실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50을 앞둔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그래서 슬프고 아픈 추억이 되겠지만, 지금이라도 할머니의 마지막 남은 삶을 이렇게라도 남겨두기로 결심했다. 진심으로 슬프고 아픈 추억을.
***
어렸을 때, 여름 방학이면 할머니는 내 손가락에 봉숭아 물을 들여줬다. 그리고 할머니 손에도 들였다. 빠지지 말라고 비닐 위에 굵은 실을 꽁꽁 묶어 놓아 아프고 불편했지만 그래도 손톱이 빠~알갛게 익어가는 게 좋아서 불편해도 꾹 참고 잠을 잤다. 손톱이 얇은 나는 두 번 정도 들이면 새빨갛게 예쁜 손톱이 되는데, 손톱이 일반적인 사람보다도 두꺼운 할머니는 두 번을 들여도 뭘 했었나…싶을 정도로 티도 안 났다.
“너는 이렇게 빠~알간데 나는 왜 이러냐.”
그러면서 두 번 세 번 할머니 혼자 더 본인의 손가락에 봉숭아 물을 들였다. 하지만 다섯 번을 해도 할머니 손톱은 새빨갛지 않고 그냥 불그스름한 김칫국물 같은 색깔이 되었다.
‘할머니는 제대로 되지도 않는데 왜 저렇게 매번 더할까’ 생각했었다.
질문하는 대신 내 빨간 손톱을 할머니한테 자랑하는 것으로 그 질문을 대신하긴 했지만...
지난 주말 아침 할머니 병원에서 간병하고 있는 엄마를 잠깐 쉬게 해 주러 가려고 나오는데 아파트 화단에 봉숭아가 눈에 들어왔다. 경비 아저씨께 물어보니 얼마든지 따 가도 된단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서 부리나케 꽃과 잎을 몇 개씩 땄다. 할머니랑 내 새끼 손톱 하나씩만 해 볼까 싶었다. 백반은 없어서 집에 올라가 비닐장갑 하나, 소금 아주 조금을 빠르게 비닐에 넣어 내려와 출발을 했다.
하지만 병원에 가는 길에 깨달았다. 병원에는 이런 거 가지고 들어가면 안 되지... 비닐봉지에서 꽃잎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두고 사진을 찍었다. 할머니에게 보여주려고. 하지만 할머니는 초점 없는 눈으로 사진을 볼 뿐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하셨다.
집으로 돌아온 밤에 수십 년 만에, 그리고 내 생에 처음으로 내 손에 스스로 봉숭아 물을 들였다. 역시 아직도 잘 때는 답답함을 참기가 쉽지 않다. 새벽이 되자마자 쑥~ 잡아 빼고는 조금 더 푹 잤다.
일어나자마자 색깔을 확인하고는 풉!
남편이 아침으로 준 비빔면을 보고는 또 풉!!
비빔면 속에 위장잠입 할 수도 있는 어정쩡한 색이 나왔다. 한번 더 꽃을 따서 들여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