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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Aug 28. 2024

엄마, 미안해. 나는 못 할 것 같아...

우리 할머니 다리는 네 개.  

[연재를 시작한 지 채 3주가 되지 않은 지난 8월 12일(월) 저희 할머니가 97년 4개월의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모두 저희 할머니가 편히 쉬실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엄마는 할머니가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면서부터 병원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병원의 정책 상 보호자는 등록해 놓은 1인만 병실에 상주가 가능하였고 보호자 교체 등록은 의료진에게 얘기하고 등록을 바꾸고 하는 등 번거로운 절차였다. 그리고 할머니의 상황 상 보호자가 자리를 비우지 않도록 주의를 요청받았기에 할머니가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까지 거의 4주 가까이를 엄마는 병원에만 계셨다. 처음 주말부터 내가 교대를 해 드리려고 했었는데, 아빠가 감기에 걸려 계셔서 괜히 집에 다녀와서 면역력 약한 할머니에게, 그리고 병실의 다른 환자분들에게 해가 될까 봐 싫다 하셨다. 우리 집이나 동생네 집에서라도 쉬면 된다고 해도 굳이 거절했다. 그러다가 엄마의 핑곗거리가 없어진 주말 나는 엄마를 대신해 토요일 아침부터 24시간 남짓의 시간을 할머니와 함께하게 되었다.


수술 후에도 할머니의 상태는 기대했던 것처럼 드라마틱하게 좋아지고 있지는 않았다. 집에선 컨디션이 일주일 넘게 안 좋으셨다가도 식사를 시작하시기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력이 올라와서 지팡이 두 개 짚고 동네 놀이터 마실을 다니셨던 할머니였다.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그래서 수술받고 회복되면서 식사를 하시게 되면 금방 그렇게 되실 거라고 막연히 기대하고 있었다. 미음에서 죽으로 식사가 바뀌면서 할머니의 홀쭉했던 볼에 살이 조금 오른 듯 보였지만, 소진되었던 할머니의 체력은 그렇게까지 빠르게 회복되지는 않고 있는 것 것 같았고, 신경은 날카로울 대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몸이 아프니 움직이고 싶은데 움직일 수 없는 고통도 큰 것 같았다.


누워있다가 침대 머리를 올리라고 해서 올려드리면 몸이 미끄러져 내려왔다고 몸을 올리라고 하고, 다시 눕혀놓으면 올리라시고, 앉혀드리면 배도 허리도 아프다고 다시 눕히라고 하고, 왼쪽으로 눕겠다 오른쪽으로 눕겠다, 소변줄이 불편해 빼겠다고 고집을 부리셔서 하루 종일 일어났다 앉았다 스쿼트를 수십 번 한 것 같다. 할머니의 그 작은 몸은 왜 그렇게 무거운지. 작고 빼 밖에 안 남은 할머니를 내가 충분히 케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심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한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느껴버렸다. 그렇게 낮시간을 보내고 불편한 잠자리를 걱정하던 나의 무지함이라니. 불편한 보호자 간이 침대에 누워 깜빡 잠이 들었다가도 할머니가 뒤척이며 내는 앓는 소리에 깨고, 중간중간 간호사들이 와서 채혈하고 투약하고 혈압재고 할 때마다 깨서 일어났다. 이른 새벽부터는 할머니의 통증이 너무 심해지고 지속돼서 의료진을 부르고 진통제를 이것으로 저것으로 바꿔가며 변화를 확인하면서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했다.


다음날 아침, 엄마는 내가 힘들 것을 걱정해서 점심도 되기 전에 병원으로 돌아왔다. 힘들거라고, 얼른 가서 쉬라고... 처음에는 일요일 저녁까지 드시고 오라고 호언장담했었는데, 난 엄마가 병원으로 돌아온 것이 기뻤고 바로 남편을 불러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 도망쳤다. 분명 전에 엄마가 쓸개를 절제하는 수술 후 입원했을 때, 할머니의 혈관 스텐트 시술을 했을 때, 남편이 수술을 하고 입원했을 때에도 병원에서 밤을 지내며 간병한 적이 있는데 이번 간병은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힘이 들었다.  24시간 남짓, 겨우 그 시간을 간병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완전히 기절했고 이후 3일 가까이 온몸이 아프고 힘들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지만 엄마에게 미안했다. 아... 나는 엄마가 아파도 이건 못할 것 같은데...


6인실 6개의 병상에는 혼자 운신이 가능한 한 분을 빼고 가족 간병은 우리뿐이었고 다른 침상은 모두 간병사가 함께 있었다. 둘 뿐인, 평생 함께 살아온 엄마와 할머니의 사이를 알기에, 그래서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지금까지 할머니를 모셨었는지 알기에 우리는 엄마도 70이 훌쩍 넘은 노인이라는 것을, 그래서 엄마가 얼마나 힘들 지를 생각도 하지 않고 엄마의 뜻만 받아들여 너무 큰 짐을 지운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도 많이 힘들었지만 이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엄마, 미안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못할 것 같아..."




지난 할머니의 생신, 가족들과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해서 친정에 갔다. 근데 할머니는 동생네 부부와 쇼핑을 갔다고 했다. 할머니가 무슨 쇼핑? 했더니 동생네가 할머니 봄 잠바를 하나 사드리겠다고 모시고 나갔다고. 좋은 일이다. 할머니가 오래 걷거나 서 계신 것이 힘드시니까 평소에는 엄마가 시장이나 마트에서 보고 할머니가 입으실만한 옷이 있으면 사다 드려서 입으셨기 때문에 할머니가 직접 쇼핑을 나간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동네도 아니고 남문 시내까지 나가신 것이니 시내 구경도 하고 옷도 사고, 오늘 할머니의 컨디션이 좋구나 하고 안심하고 있었다.


잠시 후, 할머니는 동생네 부부가 선물한 색이 고운 빨간색 잠바를 입고 들어 오셨다. 할머니는 꼭 분홍색이나 빨간색이나 붉은색 계통의 옷을 입으면 '너무 야하지 않냐?'하고 물으셨는데, 우리 할머니 오늘 엄청 야했다. 근데 할머니는 엄마 집 3층까지 올라오느라 힘드셨을 텐데, 바로 마실을 나가시겠단다. 오늘 차도 타고 쇼핑하느라 많이 걸으셨고 조금 있다가 저녁도 먹어야 하니 오늘은 그만 쉬시라고 권했는데도 굳이 답답하다고 밖에 한번 돌고 오겠다신다. 지금까지 밖에 계시다가 왔는데...


할머니는 현관에서 지팡이 두 개를 짚고 다시 먼 길을 떠나기 시작하셨다. 할머니는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날이면 매일 동네 주민센터 앞쪽에 있는 놀이터로 마실을 나가 동네 할머님들과 얘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도 보고 하면서 낮시간을 보내다가 들어오셨다. 보통날이었으면 할머니 혼자 마실 다녀오시라고 했을 텐데, 그날은 무리하시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어 할머니의 마실에 내가 동행을 했다. 놀이터까지 가는 내내 오늘 너무 무리하시는 거라며, 이미 4시가 다 된 시간이라 다른 할머니들도 다 들어가셨을 텐데 하면서 걱정하는 내 말에 할머니는 잔소리가 많다며 듣지도 않고 묵묵히 천천히 지팡이 두 개를 움직였다. '오늘 왜 이렇게 컨디션이 좋으셔~' 생각하면서 말없이 따라가 드리기로 했다.


놀이터에는 그네를 타는 아이 하나와 아이 엄마가 있었고, 놀이터 가운데에 자리한 정자에서 할머니 두 분이 자리를 잡고 앉아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할머니는 정자 쪽으로 바로 다가가 앉으셨고 할머님들이 반겨주셨다. 나도 다른 할머니들께 이사를 드리고 정자의 다른 모서리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이가 노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이 시간까지 안 오셔서 안 오시는 줄 알았다고 어디 안 좋으셨냐고 한 할머니가 물으셨다. 할머니는 '에이고!' 한번 탄식을 하셨다. 뭐지? 하고 돌아봤는데, 할머니는 왼쪽 팔을 조금 들고 오른손으로 그 소맷자락을 쥐고는 앞으로 흔들면서 말했다.

"아이, 안 산다고 했는데 애들이 굳이 데리고 나가서 이런 걸 사주겠다고 해서, 힘든데 나갔다 왔어"

얘기를 하면서 할머니는 얼굴을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찡그리시고 계속 소맷자락을 할머니들 쪽으로 밀어 흔들고 계셨다.


할머니 마실의 이유였다. 귀여워.

우리 할머니 다리는 네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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