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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Aug 21. 2024

수술, 그리고 암 4기

계속되는 기다림과 결정의 순간

[연재를 시작한 지 채 3주가 되지 않은 지난 8월 12일(월) 저희 할머니가 97년 4개월의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모두 저희 할머니가 편히 쉬실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며칠 뒤 조금 안정이 된 할머니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동안 물포함 금식을 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계속 복통을 호소하였다. 엑스레이, CT 등으로 확인한 바, 위에 있던 것들이 전혀 내려가지 않고 있으면서 위를 팽창시키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코에 호스를 삽입하여 위 내의 물을 빼내는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기계 같은 것으로 빨아들여서 한 번에 빼내는 것일 거라고 예상했었지만 코줄을 삽입해 놓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할머니가 어떻게 움직이면 코에 연결된 호스에서 검을 물이 꿀럭 꿀럭 올라오고, 또 안 나오다가 또 올라오고 하는 것들이 보였고 통을 여러 번 가는 동안,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이렇게 많은 물들이 할머니의 작은 위 어디에 있다가 흘러나오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많은 양이었다. 


콧줄이 끼워져 있는 게 불편한 할머니는 정신이 들면 콧줄을 빼려고 손을 가져가고 보호자는 그걸 못하게 하려는 실랑이가 이어졌다. 그 와중에 조직검사 결과는 암이 아니라고 해 우리를 잠깐 안심시켰으나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음식과 물이 전혀 이동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확인과 함께 수술이 논의되었다. 내과, 소화기내과, 외과 의사들이 협진하여 검사를 하고 논의한 후 우리에게 두 가지 옵션을 제시했다. 


하나는 할머니 연세가 많으시고 체력이 많이 떨어지고 계시니 복강경 수술을 통해서 위와 십이지장 끝 혹은 소장을 바로 연결하는 방법, 또 하나는 아무래도 십이지장으로 넘어가는 곳을 막고 있는 덩어리가 암일 가능성이 높으니 다시 한번 조직검사를 통해 암이 확인되면 아예 절제를 하고 연결해서 깨끗하게 진행하는 방법.


첫 번째 방법은 빠르게 진행할 수 있고 할머니에게 체력적인 부담이 덜 한 방법이나 향후 암이라면 조만간 다시 큰 통증이 찾아올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고, 두 번째 방법은 암이라면 깨끗하게 절개를 하고 가는 것이니 안전하지만 다시 한번 위 내시경, 조직검사, 검사결과 나올 때까지 다시 금식과 대기가 필요했고, 수술 자체가 할머니 체력에 부담이 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어느 방법 하나도 우리에게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미 일주일 넘게 아무것도 먹지 못 한 할머니는, 식탐이 없고 소식을 하시는 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과 물에 대한 집착을 심하게 보이고 있었고 몸은 계속 주사로 영양제가 투입되고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여위고 있었다. 할머니의 연세를 감안해서 빨리 수술을 진행하고 사시는 동안 맛있는 것 드실 수 있도록 하자는 결론에 이르러 우리는 복강경 수술로 마음을 정했다. 


내가 보호자 교체를 해서 들어간 주말, 할머니는 ‘수술해야 한대?’, ‘어디를 자른대?’ 라며 이미 수술에 대해 알고 있었다. 엄마가 그런 얘기들은 다 할머니 못 듣는 밖에서 했다고 했었는데, 어디서 어떻게 들은 것인지 깜짝 놀랐고, 이 얘기를 나중에 들은 엄마도 의아해했다. 우리 할머니는 귀가 어두우신데...


”할머니, 위에서 소장으로 넘어가는 데가 막혀서 거기를 연결하는 수술을 해야 한대. 할머니 심장에 스텐트 박았었잖아. 그거처럼 관을 하나 만들어 주는 거야. 스텐트 수술할 때 금방 끝나고 금방 나았었지? 그렇게 간단한 거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


할머니는 안심한 듯했다. 실제로 4년 전 할머니의 심장 근처 혈관을 넓히는 스텐트 수술은 가슴 어디를 열지 않고도 손목에 작은 구멍 한 개 만을 내고 금방 끝났고 회복도 굉장히 빨랐었다. 이것도 복강경이고 구멍 4개면 된다니, 그 정도면 되었다 하고 나도 안심을 했다. 


수술까지는 더 많은 기다림이 있긴 했다. 처음 예정되었던 날은 백혈구 수치가 갑자기 높아져서 수술이 연기되었다. 백혈구 수치가 높다는 의미를 잘 몰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사를 쳐다보았다. 염증 수치가 높아졌다는 의미란다. 그게 무슨 의미냐고 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사를 쳐다보았다. 의사는 지금까지 검사한 바로는 특별한 연결고리는 찾을 수 없고 혹시 그 덩어리가 암이라면 그것 때문에 염증 수치가 올라갔을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수술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물론 다른 의사는 (협진을 진행하고 있었고 주치의와 수술 집도의는 다르게 배정이 되어 있었다) 할머니의 체력을 걱정했다. 흔들렸다. 하지만, 우리는 기존의 결정을 유지했고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할머니의 투병과정에서 우리는 정말 수많은 결정에 직면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결정이 할머니의 생사, 혹은 할머니의 고통과 직결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무엇 하나도 쉽지 않았고 결정한 후에도 우리의 결정이 할머니를 위해 옳았던 것이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특히 평생을 할머니와 같이 산 엄마는 그 스트레스로 인하여 어느 순간부터는 결정에서 빠지면서 그 부담을 나와 동생, 특히 남동생에게 의지하였다. 엄마에게도 많이 힘든 일이었겠지만, 우리에게도 많이 힘든 일이었다.  


다행히 며칠 뒤, 백혈구 수치는 안정화되어 수술이 확정되고 우리는 다시 모였다. 예상 시간은 한 시간. 아, 그래도 그나마 쉬운 수술이 맞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대기실에 모여 있었다. 하지만 1시간 반이 지나도 [수술중] 문구가 [회복중]으로 바뀌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보호자가 호출되었고, 의사를 통해 위 벽에 하얀 반점들이 굉장히 많아 수술을 중단하고 긴급 조직검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암으로 확인되었다고 전해 들었다. 다만 이 정도면 암 4기라고 진단하며 전이된 부분이 넓기 때문에 어딘가를 절제하고 진행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계획했던 수술만 마무리하고 완료했다고 했다. 할머니 연세 때문에 추가적인 항암 치료 등은 권하지 않는다고. 


그래, 어찌 보면 다시 한번 조직검사 하고 기다렸어도 결과가 똑같았을 테니 복강경 수술로 빨리 결정한 것이 다행이라는 긍정회로를 돌리며 할머니가 회복되시면 맛있는 것 잘 드시며 지내실 수 있게 해 보자 다짐했다. 



*****

우리 할머니는 수년 전부터 오른쪽 귀가 잘 안 들린다. 그래서 누워 계실 때에는 핸드폰도 꼭 왼쪽 귀 옆에 놓아두시는데 실수로 오른쪽에 둔 날은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를 못했다.


할머니는 추위를 많이 탄다. 온수매트를 365일 켜고 계신다. 내복을 입지 않는 기간도 일 년에 한 두 달 정도. 극강으로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할머니를 닮았다 했다. 내복을 입기 시작한 날, 내복을 벗은 날이면 나는 할머니에게 전화해서 내가 할머니보다 내복을 더 늦게 입기 시작했고, 더 일찍 벗었다며 필요도 없는 할머니와의 경쟁을 하곤 했다.


어느 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 온수매트가 고장 났다는 얘기를 했다. 여름이었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이 에어컨을 틀고 자기 때문에 내가 종종, 자주 여름에도 온수매트를 켜고 자는 걸 알고 있는 할머니였다.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는 할머니에게 장난을 쳤다. 

"할머니, 나 온수매트 새거 사줘!" 

갑자기 할머니의 동공이 흔들렸고, 할머니는 갑자기 고개를 숙여 손가락으로 이불을 만지작 거리더니 

"뭐라는 지 하나도 안 들려. 하나도 못 알아먹겠어. 어휴... 죽어야지..." 

옆에 있던 남편도 나도 잠시 멍~했다가 빵! 터져서 크게 웃었다. 


다음 주, 또 할머니와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내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하면서 목소리를 낮추더니 물었다. 

"온수매트 샀어?" 

아.... 할머니.....ㅎㅎㅎㅎㅎ 


그런 우리 할머니는 엄마가 할머니가 못 들을 거라고 생각한 거리에서 의사와 나눈 얘기를 모조리 알아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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