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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Aug 14. 2024

나 좀 그냥 보내줘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왔습니다. 

[연재를 시작한 지 채 3주가 되지 않은 지난 8월 12일(월) 저희 할머니가 97년 4개월의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오늘 덥지만 밝고 좋은 날씨에 할머니를 잘 보내드리고 와 주말 전에 준비해 놓았던 글을 발행합니다. 모두 저희 할머니가 편히 쉬실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행히 할머니의 위내시경은 ‘쇼크’라는 큰 사태 없이 끝났다. 우리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 쉬기가 무섭게 의사의 의견이 전해졌다. 위 내에 검은 물이 많은 것으로 보아 출혈이 있었고 그 물 때문에 더 많이 내려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우선 정말 확실하게 판단하지는 못했지만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다만 물이 빨갛지 않고 검은 것으로 보아 출혈이 오래전 일어난 것으로 보이고 지금은 없을 것으로 예측한다고. 근데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넘어가는 통로가 너무 좁아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쪽에 있는 덩어리가 암이 아닐지 의심이 되어서 그 부분을 일부 잘라서 조직검사를 보냈고 결과가 나오면 다시 설명하겠다고.


그래, 암 일수도 있지. 할머니가 내시경을 언제 하셨던가......... 생각나질 않는다.


일단 할머니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이동조치 되었고, 가족 1명만 잠깐 들어가 보고 나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아주 잠깐 10분 정도만 가능하다고 했다. 엄마는 내일부터 중환자실 면회 때 오면 된다고, 동생은 자기는 여기 오기 전에 바로 봤다고 나에게 그 기회를 양보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거의 하루 만에 만난 할머니는 어제 보다 더 안 좋은 얼굴이었고, 다행히 내가 들어간 찰나에 잠에서 깨어나셨다.


'할머니 괜찮아?' 하고 내가 할머니의 왼쪽 귀에 대고 얘기했다. 우리 할머니는 몇 년 전부터인가 오른쪽 귀가 잘 안 들려서 전화도 꼭 왼쪽 귀 옆에 놓아두고 있었다.

나를 보고 웃어줄 줄 알았던 할머니가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목소리를 냈다.


"나 좀 그냥 보내줘"

아주 가늘고 힘든 목소리였다. 할머니 얘기를 들으려고 할머니 입가에 귀를 가져대고 있던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눈물이 급하게 핑 돌아 떨어지려고 했다. 눈을 급히 깜빡이며 눈물이 퍼져 마르게 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침을 한번 크게 삼키고 가볍게 숨을 내쉬면서 몸을 폈다.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어 할머니의 머리를 말없이 쓰다듬어 드렸다. 잠시 후 간호사는 나에게 나갈 시간임을 알려주었다.

"조금만 여기 있다가 검사 결과 나오고 괜찮아지면, 바로 집으로 갈 거야. 우리 좀 있다가 만나, 할머니~"

말하고는 할머니 볼에 뽀뽀를 해 드리고 나왔다. 할머니 볼에 내가 언제 뽀뽀를 했던가... 생각나질 않는다.


밖으로 나가면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하며, 중환자실에서 대기실로 나오는 긴 복도를 천천히 걸으며 손부채질하면서 눈물을 말리고 또 말렸다. 다행히 가족들을 만나서는 담담하게 '할머니가 많이 힘드셨나 봐, 계속 주무시네' 하고 안심을 시켰다.


더 이상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우리는 피곤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나는 차를 타자마자 무너져 내렸다. 꺽꺽 소리까지 내가며 울기 시작했고 남편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좀 가라앉은 후 남편에게 할머니의 얘기를 하면서 또 울음이 터졌다.

‘잘했다. 잘했어. 가족들이 그 자리에서 들었으면 많이 마음 아팠을 텐데 잘 참았다.’ 하면서 남편이 위로를 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할머니의 눈빛과 목소리가 계속 생각나, 도무지 눈물이 멈추지 않고 밤 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

할머니는 수년 전 나에게 얼마의 돈을 맡기셨다. 할머니에게는 큰돈이었을 것이다. 부모님이 가게를 하시느라 우리를 돌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할머니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돌봐주면서 같이 사셨다. 다른 경제생활을 하시지는 못했으니 엄마나 친척들, 우리가 드리는 용돈들이 할머니 수입의 전부였을 것이다. 연세가 드시면서 정부에서 받는 일부의 돈이 있었을 것이고. 최소한 지난 40년 동안에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할머니는 도대체 돈을 쓰신 적이 있으신지, 아니 이 큰돈은 할머니가 도대체 몇 년 동안, 아니 몇 십 년 동안 모으신 것일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머니에 대해서 아는 것이 도대체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할머니는 그 돈을 맡기시면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돈은 네가 잘 보관하고 있어. 위험한 거 하지 말고 그냥 예금에 넣어. 이자 높지 않아도 되니까 은행에 넣어. 다른데 넣지 말고. 그러고 나서 내가 나중에 쓰러지거나 병원에 들어가면 엄마랑 가족들한테 부담되지 않게 이 돈으로 쓰게 해. 그리고 만약에 이 돈도 모자라게 되면 네가 나 잘 보내줘."


처음에는 그 '보내줘'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장례를 잘 모셔달라는 것인지... 할머니랑 얘기를 하다가 알았다. 말 그대로 보내달라는 말씀이셨다. 그때의 나는, 아직도 정정하신 할머니와 함께 있던 나는 아주 쉽고 가볍게 그 말을 받아쳤다.


"할머니, 그러면 나 철컹철컹 가야 돼!"


할머니가 고생하고 계셨던 그 시간 동안, 해 드릴 수 있는 일이 없음에 참으로 많이 무기력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지금은 할머니가 더 이상 아픔이 없는 곳에 계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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