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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Sep 04. 2024

집으로 돌아올 수 없는 할머니

안!맞!았!지!

[연재를 시작한 지 채 3주가 되지 않은 지난 8월 12일(월) 저희 할머니가 97년 4개월의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모두 저희 할머니가 편히 쉬실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며칠 뒤 의사는 퇴원 얘기를 꺼냈다. 사실 수술하고 회복되는 과정에서 이제 더 이상 병원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을 거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직 소변줄을 차고 있었고, 혼자서는 앉아 있지도 돌아눕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게다가 엄마의 어깨와 허리, 무릎은 4주간의 병원 생활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퇴원 얘기가 나오기 전부터 나는 동생과 얘기를 시작했다. 다행히 해당 대학병원에는 요양병원이 옆에 붙어 있었는데, 어르신들만 있는 요양원이 아닌 항암 후 회복하는 환자나 재활운동을 하는 환자들도 많은, 높은 수준의 의료진이 상주하고 재활시설도 훌륭한 큰 요양병원이었다. 만약에 상태가 어려워지면 바로 옆 건물로 이동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그곳이 희망이었다. 40년이 다 되어 가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3층짜리 상가주택인 엄마네 집, 방마다 문턱이 있어 워커를 짚는다고 하더라도 화장실도 혼자 가실 수 없는 그 집에 할머니와 엄마를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현실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동생은 얼마를 더 사실 지 모르는 할머니를 그런 곳으로 모시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부터 느꼈던 엄마의 결정은 명확했다. 본인의 마음과는 다르게 본인의 몸이 더 이상 간호를 감당할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과 아들의 마음을 알고 있어 결정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내가 못된 년이 되고 말지 싶어 동생에게 엄마의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였고 우리의 마음이 불편한 것보다는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더 힘드실지 얘기했다. 물론 동생도 알고 있었으나 마음이 불편함을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엄마에게도 명확하게 엄마가 생각하는 것이 엄마에게도 할머니에게도 모두 옳은 결정임을 인지시키고 용기를 주었다.


다음은 할머니 차례였다. 정신이 말짱한 할머니가, 자존심이 누구보다도 쎈 우리 할머니가 그 상황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곳에 가서 다른 사람의 손에 본인을 맡길 수 있을지. 예전에 회사 임원분이 아버님 자택 간호가 어려워 요양병원으로 모시기로 결정하고 아버님께 의중을 전달드린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아버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어 돌아가신 적이 있었다. 그 임원 분은 아버님이 자식에게 버림을 받는다고 생각하시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고 그래서 갑자기 그렇게 되셨다고 생각하시며 본인의 선택을 많이 후회하셨었다. 그때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우리 모두 이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였다.  


할머니가 누워있던 병실에서 할머니의 자리는 창가였다. 그리고 자리에서는 옆쪽 건물인 그 요양병원이 보였다. 엄마는 할머니가 갑자기 놀라지 않도록 조금씩 얘기를 시작했다. 내가 팔이랑 허리가 많이 아프다고. 우리 집은 엄마가 다니기에 힘들어서 다리에 힘만 조금 생기면 같이 다시 집에 가자고. 할머니는 ‘그래, 너도 많이 힘들지...’하고 창 밖으로 얼굴을 돌리셨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한 날이면 매일 저녁 퇴근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나에게 울먹이며 너무 힘들다고 했다. 어쩔 수가 없는데, 할머니가 힘들어하실까 봐 너무 힘들다고.


주말, 엄마와 교대를 하러 다시 병원에 갔다. 할머니는 다행히 한층 생기가 있어지기는 했지만 한 달 가까이 침대에 누워계셨던 터라 다리는 아직도 젓가락만큼 말라 있었다. 할머니가 기억하는 나의 ‘사춘기인지 개춘기인지‘에 대한 얘기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던 날이다. 그리고 나는 돌아오기 전 할머니한테 얘기를 꺼냈다.

"할머니, 엄마가 한 달 넘게 여기 있으면서 연골주사도 추가로 맞아야 하는데 못 맞고, 한약 먹던 것도 못 먹어서 조금 시간이 필요해. 할머니도 이제 밥 먹기 시작하면 다리 힘 생길 테니까, 그동안 엄마는 다시 연골주사도 맞고, 한약도 먹고, 물리치료도 받고 해서 몸이 조금 돌아오면 다시 집에 가자. 응?"


정말이었다. 아주 조그만 양이지만 할머니가 죽 말고 밥을 드시기 시작했으니 곧 다시 다리에 힘이 생길 거고 그러면 예전처럼 혼자 지팡이를 짚고 계단을 내려가 놀이터까지 가지는 못하시더라도 집 안에서 생활은 하실 실 수 있으실 거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알아. 알았어~’ 하셨다.

"할머니, 여기 집이랑 가까워서 엄마도 매일 올 수 있고(실로 엄마는 매일 면회를 갔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전화하면 바로 올 수도 있으니까 우리 조금만 참자. 알았지?"

"알아. 알았어~"


할머니도 우리도 모두 알고 있었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그리고 우리 서로가 모두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를...




나는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퇴근길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남편과 한창 싸우고 사이가 안 좋았던 어느 날, 차 막히는 강변북로에서 할머니에게 나와 남편이 얼마나 맞지 않는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지 토로를 하고 있었다. 물론 심각한 얘기를 하고자 하는 목적은 아니었고, 할머니를 웃겨 주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에 정말 사소한 사건들을 얘기하면서 껄껄거렸다. 예를 들어, 나는 기름진 음식을 싫어하는데 남편은 치킨을 너무 좋아해서 자꾸 저녁때 밥 안 주고 치킨을 준다. 나는 밥이 먹고 싶다고라던가, 여름에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이 글쎄 주말에 에어컨을 48시간, 아니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풀가동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카디건을 입고 온수매트를 켜고 이불을 덮고 자느라 힘이 든다던가 하는 등의 얘기였다. 그저 투정하는 투로, 매일 만나는 사람이 별로 없고 말할 사람도 한정적인 할머니에게 대화 상대가 되기 위해 그리고 웃겨주기 위해 떠들던 말들이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할머니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듯 나를 다독이기 위해서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이런저런 의견을 제시하고 나는 반박하고 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할머니가 '사람들은 말이야' 혹은 'ㅇㅇ이(남편)는 말이야' 등으로 말을 꺼내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할머니의 생각을 얘기하고, 나는 '아니 할머니, 근데!' 이러면서 반박을 하고 그런 대화가 돌림노래처럼 계속 이어져 나갔다. 짐짓 진지한 할머니의 얘기에 웃겨서 빵 터지기도 여러 번, 그러면 할머니는 내가 또 할머니를 놀린다며 흐흐흐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나에게는 그것이 할머니와 나의 티키타카였다.


그날도 그런 류의 돌림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날은 할머니가 다른 방향으로 돌림노래를 시작했다. 너는 왜 그렇게 너랑 안 맞는 사람을 골랐냐고. 다 네가 자초한 일이라서 난 모르겠다고. 엥? 이건 할머니의 패턴이 아니었는데 오늘은 할머니가 나를 골려먹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할아버지는 우리 엄마가 중학생이던 옛날에 돌아가셨다. 거의 60년 전인가... 그 덕분에 결혼 전 풍족했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그때 당시 밥 못 먹고살던 사람들도 많았었는데 그런 어려움 전혀 모르고 자랐다던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경제적인 가장이 되어 이런저런 장사를 하면서 엄마를 키웠고 그렇게 힘든 세월을 살아 내셨다. 그 덕에 우리 엄마도 중학교 때부터 집안 살림을 하고 식사를 담당하고 하느라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갑자기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할머니는 할아버지랑 잘 맞았어?"


갑자기 할머니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할머니는 큰 한숨을 쉬고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이그!!! 안!맞!았!지!"


하하하하하. 큰 한숨과 함께 거의 화를 토해내 듯 대답하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빵 터져서 크게 웃어댔고, 할머니도 순간 본인이 한 대답에 놀라셨는지 잠시 멈칫하더니 큭큭거리면서 웃으셨다.


"그러게... 사람들은 왜 그렇게 안 맞는 사람들이랑만 사냐...?" 할머니가 웃음을 그치면서 말했다.


사실 할머니는 연애결혼도 아니고 급작스럽게 어른들이 정해줘서 한 결혼이었다던데 그 안 맞음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하지만 그 짧은 결혼생활의 어려움보다 그 후 60년의 삶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할머니 간호하고 돌아온 어느 주말 혼자였던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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