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희망은 가히 불행한 사람에게 오아시스 같은 법이다.
그렇지만 이 희망이란 때때로 한 인격체로서 성장을 방해한다. 그렇기에 소수에게는 불청객일 수도 있다. 현대에 와서 사람들은 희망에 너무 많은 것을 맡겨두고 있다. 자신의 가치와 인생을 말이다. 안 좋은 일들에 대한 대표적인 답은 모두 다 좋아질 것이라는 말이 내게는 곧 모욕처럼 들린다. 마음과 정신이 공허한 사람은 현실적으로 무언가에 기대지 못하는 상황을 대게 못 견뎌한다. 그렇기에 추상적인 것들에 의지할 수 있도록 자기 최면을 건다. 어떤 사람은 시간에게, 어떤 사람은 운에게, 어떤 사람은 희망에게.
과연 희망을 긍정하는 것은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자문과도 같은가? 아니면 머나먼 이상향을 쫓는 대책없는 허상에 더 가까운가? 구원은 과연 희망 속에 있는가? 구원은 고통에 대한 깨달음 속에 있는가? 자신 내면에 관하여 질문을 하는 것은 자신의 치부를 어느 정도 동의하는 것이 되므로 많은 이들은 은연 중에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의 깊은 내면의 알고리즘을 알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곧 향유한다는 생각으로 해부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 태어나,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은 언젠가서부터 낯간지러운 자문이 되었다. 왜 그런 것인지는 자아성찰이 되는 사람들은 말을 안 해도 알 것이다. 각자만의 답이 있겠지만 인간은 언제나 앎의 권리를 가지기 두려워하였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이쯤에서 생각해봐야한다. 희망의 끝은 인간이 생각한 최선을 넘어 최고를 이룰 수 있는 이상향이자 이데아인가? 아니면 미지에 대한 불확실함의 두려움을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아닌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되는 것이 희망인가? 희망이라는 사전적인 정형화된 정의보다는 본질과 이면을 들여다보는 진실의 눈을 키운다면 매일매일이 새로울 것이다. 추상적이지만 기억하였으면 한다. 세계 곳곳을 누비는 창공에서부터 아낌없이 자신에게 오는 바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신선하고 시원하다는 것을. 그렇게 불청객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두려움을 걷어내고 탐구해보면 그것이 '득'인지 '실'인지 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