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悪)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악은 태어나지 않는다. 해석될 뿐이다.

by sun
<악(悪)>



악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믿는 선은 대체 어디서 태어났는가.


아이를 보자.

배고프면 울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손을 뻗는다.

본능을 악이라 부른다면, 생존조차 죄가 된다.

그러나 그 본능을 선이라 부를 수도 없다.

아이의 행동에는 의도도, 도덕도 없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공백으로 태어나,

세상이 씌워주는 언어를 받아들이기 전의 무(無)일 뿐이다.




그렇다면 악은 만들어지는가?


맞다.


가난이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

폭력이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

그리고 억압결핍은 사람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그러나 그를 그렇게 만든 환경 또한

또 다른 환경의 산물이다.


폭력을 가한 자도 한때는 폭력에 길들여진 아이였고,

결핍을 강요한 사회도

이전 세대의 탐욕과 두려움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악은 개인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악은 연쇄된 인과가 만들어낸 부패의 잔여물이다.


그를 악이라 부르며 심판하는 순간,

당신 역시 또 다른 인과 위에서

그를 심판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일 뿐이다.




악이란 본질이 아니다.

악은 누군가가 해석하고 붙인 낙인이다.


전쟁터에서 적을 죽인 자는 영웅이라 불린다.

평화로운 마을에서 사람을 죽인 자는 살인자라 불린다.

행위는 같다.

달라진 건 누가 이익을 봤는가, 누가 피해를 봤는가뿐이다.


그리고 당신이 누군가의 행동을 악이라 부를 때,

그 순간 당신은 스스로를 선한 위치에 둔다.

그러나 당신의 그 위치는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오늘 당신이 선이라 믿는 행동도,

내일의 누군가의 눈에는 잔혹한 악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이 말하는 악이란 무엇인가?


그저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이유,

당신이 감당하기 싫은 타인의 선택,

당신이 다치기 싫은 당신 자신의 공포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당신은 악인을 미워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니다.

당신은 그 악으로 인해 당신이 입은 상처를 미워할 뿐이다.

악 자체는 없다.

있다고 느껴지는 건 당신이 느끼는

불편함,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제거하고 싶은 욕망뿐이다.


악은 태어나지 않는다.

악은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악은 관계 속에서만 살아남는 이름표다.


당신은 악을 심판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묻겠다.


그 악을 규정하는 당신의 손은 깨끗한가?

아니면 아직 ‘악’이라 불리지 않았을 뿐,

당신의 선택 또한 누군가를 무너뜨리고 있는가?


당신의 도덕은 정말 정의로운가?

아니면 그저 당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피처인가?



당신이 믿는 선과 악의 경계는 허상이다.

선은 당신이 이익을 보는 순간에만 유지된다.

악은 당신이 피해를 입은 순간에만 분노된다.

그 경계는 절대값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언제든 뒤집힌다.


당신이 스스로를 선한 자라 믿는 순간,

당신은 이미 누군가에게 작은 악이 되어 있다.

그리고 당신이 미워하는 악인조차,

그에게는 생존을 위한 최선이었을 뿐이다.




결국 악은 타고나는 것도,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악은 당신이 필요할 때만 꺼내 드는 해석이며,

타인을 가두기 위한 언어다.


그러니 다시 묻겠다.


당신은 정말 악을 미워하는가?

아니면 당신이 두려워하는 고통과 그 그림자를 미워하는가?


그리고 그 두려움이 없다면,

당신은 여전히 선을 선택할 수 있는가?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