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이미 주어진 인과의 결과

자신이 주체라고 착각하는 삶

by sun

인간은 선택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것을 원했고, 그래서 이렇게 행동했다고.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이미 결정되어 있던 인과가 숨어 있다.

욕망의 방향, 두려움의 그림자, 사회가 심어준 도덕의 틀.


모든 선택은 그것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수많은 변수에 의해 짜여진 경로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신이 주체라고 착각한다.


“나는 자유롭게 선택했다.”


정말 그럴까?




자유의지라는 미신


어릴 때부터 우리는 ‘선택’이 자유라고 배웠다.

‘네가 원하면 할 수 있다’, ‘결정은 네 몫이다.’

그러나 그 결정의 순간에 자리 잡고 있는 건 무엇인가?


당신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누구에게 호감을 느끼는지,

어떤 상황에서 화를 내는지조차,

이미 과거 경험, 유전자, 문화, 기억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반응이다.


“나는 오늘 이 길을 선택했다”는 말은 사실

“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이미 갖춰져 있었다”

는 말과 다르지 않다.


선택은 자유의 증거가 아니라, 인과가 쌓여 만든 결과물일 뿐이다.




조건반사처럼 움직이는 인간


생존을 위해,

혹은 인정받기 위해,

혹은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인간의 행동 동기는 늘 외부 자극과

내면의 반응으로 이루어진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는다.

모욕을 당하면 분노한다.

사랑받고 싶어 다정한 말을 하고, 미움받기 싫어 침묵한다.


이건 단순한 본능의 얘기가 아니다.

심지어 윤리적 결단조차 조건반사다.


“도와야지.”

그 결정도 사실 사회가 주입한 선의 기준과 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이 합쳐진 결과다.

거기에는 ‘순수한 자유’ 따위는 없다.




이미 짜여진 인과의 사슬


한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겪는 경험, 부모의 말투, 친구와의 관계, 배운 언어, 사회의 도덕규범.

이 모든 것들이 선택의 구조를 만든다.


당신이 어떤 가치관을 갖게 될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혐오할지,

어떤 상황에서 죄책감을 느낄지,

모두 이미 당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주어진 것이다.


즉, 당신이 “이건 내 선택이야”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그 선택은 이미 당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환경과 기억이 당신 안에서 반응한 결과일 뿐이다.




‘나’라는 주체는 실제하는가



그러면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디 있는가?”


선택이 모두 인과의 사슬이라면,

‘나’라고 불리는 의지는 실체가 아니라

이 모든 인과가 일시적으로 모여 만들어낸 환상이다.


우리가 책임·도덕·선악이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은 이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가 만든 장치일 뿐이다.

“네가 그렇게 선택했으니 책임져라.”

그러나 책임이란 말도, 결국 그 선택을 하게 만든 조건에 의해 이미 예고된 반응이었을 뿐이다.




자유라는 허상 위에서


인간은 자유를 믿어야 안심한다.

“내가 결정했고, 내 인생은 내 것이야”라는

서사가 없으면 공포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단지 과거와 현재가

만들어낸 결과다.


선택은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주어진 경로 위에서

이루어지는 움직임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무의미한가?

아니다.

이 사실을 직면하면, 오히려 자유의 허상에 매달리며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미화하는 짓을 멈출 수 있다.

“나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자책할 필요도 없고,

“나는 옳은 선택을 했다” 자만할 이유도 없다.




선택은 당신의 것이 아니었다.


오늘 당신이 한 선택도,

내일 당신이 할 선택도,

모두 당신의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사랑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과거의 상처와 결핍이 만든 필연이다.


당신이 증오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환경이 심어준 반사신경일 뿐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오히려 묘한 해방감이 찾아온다.

“내가 전부를 통제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그 비자유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자유라는 환상에 속박되지 않는다.




선택은 자유가 아니다.

선택은 이미 주어진 인과의 결과다.


당신이 주체라고 믿었던 의지는

사실 수많은 조건과 환경이 만들어낸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니 묻는다.


당신은 정말로 당신 의지로 살아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혹은 이미 짜여진 흐름 속에서 잠시 ‘내가 결정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가?


그리고 그 답이 무엇이든,

당신은 여전히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것마저 이미 정해진 결과처럼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