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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쯔유를 많이 찍어 먹지 못한 인생

형식과 체면에 대하여

by 정써니

일본 어느 왕이 죽을 때 남긴 말의 일화가 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쯔유를 더 많이 찍어 먹을 걸...”


그토록 많은 권력과 지위를 누린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고작 ‘쯔유’였다니..


하지만 나는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그 말은 단순한 음식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건, 평생 체면과 형식 안에서 살아온 사람의 깊은 회한이었다.


메밀면을 소스에 듬뿍 찍어 먹는 건

고상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고위층의 식사 자리에서,

쯔유는 살짝 찍는 게 예의였다.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가 교양이고,

절제가 인격이라 배웠으니까.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많이 먹고 싶어도 참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삼켰고,

울고 싶은 밤에도 울지 않았다.

그렇게 ‘품격 있게’ 살아낸 삶의 끝에서

그는 말한 것이다.

쯔유를 더 많이 찍어 먹을 걸.


나는 생각한다.

우리도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적당히’, ‘체면상’, ‘눈치껏’

진심을 절반쯤 감추며.


우리는 자주 배웠다.

너무 좋아하지 말고,

너무 기대하지 말고,

너무 드러내지 말라고.

그러다 결국,

너무 살지 않은 채 살아간다.


쯔유 한 방울에도 자유가 있다.

내가 원하는 만큼 담그고,

내가 원하는 만큼 살아도 된다는

조용한 선언처럼..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은,

쯔유를 마음껏 찍어 먹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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