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사랑을 만나러 가는 아침

화실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작은 봄의 장면들

by 정써니

사랑은 말이 아니라

색으로 시작된다.

생각으로 맡은 봄 냄새

생각으로 맡는 계절

봄은 생각으로 먼저 온다

사랑을 만나러 가는 길처럼

나는 화실로 향한다.


집 문을 나서자

봄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 사이로 슬쩍 파고든다.

얇은 스카프가 그 바람을 부드럽게 막아

추위는 오래 머물지 못한다.


가벼운 태블릿이 든 가방 하나를 들고

편의점 옆 작은 꽃집 앞을 지난다.

꽃들은 누군가에게 전해질 순간을 기다리며

단정한 포장 속에서

이미 작은 집을 마련해 두고 있다.


아직은 새싹이 잠든 계절.

마른 가지들 사이로

햇살만 먼저 지나가고 있다.


아파트 광장에는

이른 시간의 강아지 산책로가 열려 있다.

그중 한 마리

회색 푸들이 작은 회양목 옆에서

연신 킁킁거린다.


종족의 영역을 확인하는 몸짓이겠지만

내 눈에는

봄의 냄새를 먼저 맡아보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아직 보이지 않는

새싹의 기척을 찾는지도 모른다.


걸음은 계속 이어지고

루틴은 이미 몸이 먼저 읽어낸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하얗다.


높은 아파트들이

머리 위에서 서로 맞닿을 듯 서 있다.


지름길로 접어들면

문을 막 열기 시작한 식당에서

아침 냄새가 흘러나온다.


음…

오늘은 콩나물국이다.


조금 더 걸으면 순댓국집.

쿰쿰하고 묵직한 냄새가

코끝을 살짝 찌른다.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라

콧등이 잠깐 찡그려진다.


신호등 앞에서

겨울을 건넌 산수유나무가

노랗고 작은 주먹을 꼭 쥐고 서 있다.


무슨 보물을 쥐고 있는 걸까.


카메라를 꺼내

접사로 꽃봉오리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길게 느껴지던 빨간불은

어느새 파란불로 바뀌어 있다.


화실 앞에 거의 다 와

작은 건널목에서

주차장으로 들어오던 차와

잠시 마주 선다.


아주 짧은 무언의 시간.


운전자의 멈춤으로

오늘의 선택은 보행자인 나에게 돌아온다.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건네고

나는 화실 문을 연다.


문을 여는 순간

어제의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 듯

익숙한 유화 물감 냄새가 먼저 나를 맞는다.


테이블 위에는

어제 잠시 멈춰 두었던 붓과 팔레트가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캔버스를 다시 바라본다.


하얀 화면 위에

아직 끝나지 않은 생각들이

어디에선가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붓을 들면

조금 전 걸어왔던 길의 장면들이

색으로 돌아온다.


꽃집 앞의 꽃들

회양목 옆의 회색 푸들

산수유나무의 노란 주먹

파란 하늘과 흰 구름


모두가

조금씩 다른 색으로

내 팔레트 위에 내려앉는다.


나는 그 색들을 조심스레 섞으며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말이 아니라

색으로.


붓 끝에서

천천히.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