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혀진 그녀의 정체

by 친절한 햇살씨

지난 토요일, 내게 도시락을 싸다 주었던 K에게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하다가, 초콜릿 같은 것은 녹을 테니, 쿠키 같은 것이 어떻겠느냐고 친한 선생님이 말씀하시기에, 월요일 퇴근길에 제과점에 들러 쿠키를 샀다.


그리고선 화요일 날 출근하여 도시락 통 안에 쿠키를 넣고, 작은 쪽지를 써넣었다.


“사랑하는 K야~! K의 정성 어린 도시락. 정말 감동이었단다.
맛있게 잘 먹었어. 고맙구나. 늘 힘내고, 파이팅~! 알지? “


근데, 마침 그날이 관내 연구수업이 있어서 출장을 가야 했기에, K를 미리 따로 불렀다.


K~!
쌤이 오늘 출장 가니깐,
이따가 부장님이 종례 해 주실 거야.
종례 마치면 살짝 와서
여기에 있는 도시락 통 들고 가.
알았지?



네.


그리고선 출장을 갔다.


출장을 마치고 집에 와서 시계를 보니, 녀석들 종례시간이 다 되어 가길래,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청소와 문단속을 철저히 잘하고 갈 것을 당부하고 K가 혹시 잊고 갈까 봐 K를 바꾸어 달라고 했다.



K~ 아까 샘이 한 말 기억하지?


네. 벌써 가져왔어요.


뭐? 애들 안 보게 가져가야지~
왜 벌써 가져갔어?


아뇨. 가방에 안 보이게 넣어 두었어요.


그래? 알았어. 내일 보자.


네.


녀석이, 다른 친구들이 보지 않도록 잘 가져갔을까 의심스러우면서 걱정이 되면서도, 가방에 안 보이게 잘 넣어뒀다니 그냥 믿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오늘.

2교시 마치고 쉬는 시간.


가정실습으로 만든 탕평채가 교무실에 올라와 있어서, 선생님들과 함께 모여 앉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우리 반 녀석들 몇몇이 시끄럽게 몰려왔다.



쌤~있잖아요~!
다☆이가 궁금한 게 있대요.


궁금한 건 다☆이라고 하는데, 같이 온 현☆이, 보☆, 보☆, 은☆가 더 궁금해서 죽겠단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다☆아~빨리 물어봐.
궁금하다면서?



은☆와 현☆이가 다☆이를 보챈다.



왜?
다☆이가 뭐가 궁금한 거야?


다☆이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웃으면서 어렵게 말했다.



있잖아요...


응.



K한테 과자를 준 여자가 누구예요?



‘헉. 이게 무슨 소리지? 녀석이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속으로 당황스러웠지만, 태연한 척하면서 물었다.




과자? 글쎄...
그건 일급비밀이라서
말해주면 안 되는데?


아뇨..
몇 반인지만 가르쳐 주세요.



녀석들이 정말 궁금해 죽겠는지, 자꾸 보챈다.



왜?
그렇게 궁금해?


네.


무슨 말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찔리긴 했지만, 설마 녀석들이 과자를 준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지는 못하겠지 하는 생각에 이렇게 말했다.



샘두 잘은 모르는데,
[진짜] [이쁜] [여자]인 것은
틀림없어.


내 말에 K 녀석도 실실거리면서 맞장구쳤다.



맞아. [진짜] 예뻐.


녀석들은 [진짜 예쁜 여자]라는 말에 더더욱 궁금해졌는지 또 물었다.



그럼.
그 여자가 1반에서 5반 중에 있어요?


‘흠..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


갈등하는데, K가 대신 대답했다.


맞아.
1반에서 5반 사이에 답이 있어.


‘하기야, 내가 1반에서 5반까지만 수업을 들어가니,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


녀석들은 궁금해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종이 울리자 대답을 못 듣고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교실로 우르르 올라갔다.


샘들과 탕평채를 마저 먹고선 , 3교시 수업을 들어가는데, 마침 우리 반 수업이었다.


갈증이 나서 물을 한 잔 받아서 수업에 들어가려고, 우리 반 앞문 쪽에 있는 정수기 앞에 서서 컵에 물을 채우는데, 열린 문 사이로 나를 본 우리 반 녀석들이 갑자기 괴성을 질러댔다.


우~~~~~~엑~~~~ 에~~~~~~
이~~~~~~우~~~~


나는 놀라서,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어서 그런가 하고 주변을 살펴봤는데, 거기엔 나밖에 없었다.


‘아니, 저 녀석들이 미쳤나, 왜 저러는 거지?’


나는 [왜?]라고 묻는 입 모양을 하면서 , 눈을 동그랗게 크게 뜨고 녀석들을 계속 쳐다보았다. 그런데도 녀석들의 괴성은 그치지 않았다.


컵에 물을 다 채워서 교실 안에 들어서니, 괴성은 더 커졌다.


우~~~~~~~~~~~~~~~~~~~~
웩~~~~~~~~~~~~~~~~~



뭐야?
너네 왜 이래?



그러자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보☆가 한 마디 했다.


쌤~!
K한테 과자를 준
[그 여자]의 정체가 밝혀졌어요.


보라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녀석들은 또다시 괴성을 질러댔다.


우~~~~~~~~~~~~~
웩~~~~~~~~~~~~~~~~~~~~~~~


‘헉.^^: 내 입으로, 광한이한테 과자를 준 여자가 [진짜 이쁜] 여자라 했던 것을 알고, 녀석들이 저렇게 괴성을 질러대는 건데, 이 민망함을 어떻게 극복하지? 꼭 일을 만든다, 만들어 ^^;;;’


뻘쭘해진 나는 , 씩 웃으면서 “얘들아, 우리 반 진도도 느린데, 수업해야지?”라고 이야기했다.


녀석들은 계속 괴성을 지르더니,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점점 잠잠해졌다. 그러더니 여기저기에서 또 아우성이다.


쌤~ 뭐예요~ 광한이만 과자 주고~~~!


쌤~ 진짜, 어떻게 된 일이에요?


아니, 있잖아, 얘들아~!
샘이 K만 [특별히] 사랑하거나 ,
관심이 있어서 준 것이 아니라,
K가 도시락 통에 뭘 가져왔길래~


“뭘 가져왔는데요?”


“어~유부..”


“어? 쌤~! 얘기하지 마요!”


K가 민망했는지 얘기하지 말라고 한다.


“어.. 암튼 먹을 걸 좀 가져왔어.
근데, 빈 통을 그냥 돌려주기가 좀 그렇더라구.
그렇지 않니?”


그제야 녀석들은 수긍을 하면서 잠잠해졌다.


수업을 진행하는데, 녀석들을 한 명 한 명 보고 있자니, 자꾸만 웃음이 난다.


내가 특별히 광한이만 따로 불러 과자를 준 줄 알고, 섭섭해 한 녀석들.


녀석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나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서 저러는 거지, 하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또 싸~해진다.


6교시에 다른 반 수업을 하다가 잠깐 창밖을 보니, 우리 반 녀석들이 체육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날도 더운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소프트 볼을 하는 녀석들.

녀석들에게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씩 돌려야겠다고 생각한다.

6교시가 끝나자마자 은혜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고 시켰다.


종례 하러 들어가는 내 손에, 아이스크림이 든 까만 봉투가 들려 있는 것을 본 녀석들의 입이 찢어질 듯이 벌어진다.


“야~ 아이스크림이다~!”


“우와~~ 빨리 먹어요~!”


먹을 것 좋아하는 것은, 어른인 나나, 녀석들이나 똑같다.


아이스크림을 모두 하나씩 물고 있으니, 어느 종례시간보다 조용하다.



“얘들아~!
내일은 성적표에 부모님 답장받아오는 거
잊지 말고 꼭 가져와~!
청소 깨끗이 하자~!”


종례랄 것도 없이 간단하게 이야기를 마쳤는데도 녀석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먹던 아이스크림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다.


아이스크림 하나에, 이토록 행복해하는 녀석들.


혹시라도 내 관심이 어느 누군가에게만 쏠릴까 봐 염려하고, 내게 사랑받기를 원하는 녀석들.


37명이라는 구성원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지만, 한 영혼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 하루다.



2005. 5. 25


p.s

종례를 마치고, 청소도 마치고 교무실에 있는데, K가 내려왔다.


“쌤 ,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으세요?”


“왜?”



“어떻게 [특별히 사랑해서가 아니라]는
말씀을 하실 수가 있으세요?”


‘허거걱.... 갈수록 산이다.’


“아니.... 너만 특별히 사랑한다고 하면,
다른 친구들이 얼마나 상처 받겠니?”


그러나, 녀석은 내가 아이들에게 한 말이 못내 서운했나 보다.


‘역시... 교사는 [말] [지혜롭게] 잘해야 해.’


오늘 하루도 어리바리 써니. 아이들에게 많이 배운다.


“제게 아이들을 더 깊이 있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지혜를 허락하소서!”



2005.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