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에게.
B!
"쌤! 오늘 상담해도 돼요?" 하고 먼저 말을 건네 온 너.
안 그래도 모둠일기에서 언뜻 보였던 네 고민이 생각나서 반가운 마음으로, "그럼~." 하고 대답했었지.
조용하고 얌전하면서도 내성적인 너인지라 먼저 네 속내를 꺼내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얼마나 힘들었던 것일까.
"쌤이 들으시면 놀라실지도 몰라요." 라는 말로 시작한 네 이야기.
하지만 네가 걱정할 만큼 놀랄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단다. 다만, 그런 사연을 갖고도 이렇게 반듯하고 의젓하고 속깊게 잘 자라고 잘 생활해 온 네가 대견하고 기특하고 안쓰럽고 마음저릴 뿐이었지.
B.
열 여섯의 샘도 너만큼이나 철이 들었었을까? 그래. 그랬던 것 같아. 샘이 이야기 했지?
모든 사람들이 겉으로는 다 행복해보이고 평안해보이는 삶을 살지라도 저마다 지고 가는 짐이 하나씩 있다고 말야.
네가 힘들어서 울다가도 '나보다 더 힘든 애들이 있겠지.' 생각하고 눈물을 닦았다는 네 말에, 샘이 해줄 수 있는 건 그냥 네 손을 잡아주는 것밖엔 없어서 미안한 마음만 가득했단다.
B.
오늘 너와 한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하고 난 후, 샘은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단다.
아침마다 지각을 할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뛰어와서는, "아...힘들다.."는 말을 입에 늘 달고 있었던 너.
그런 너를 향해, "뭐가 힘들어?" 하고 물을 때마다 너는
"뛰어오는 게 힘들어요." 하고 대답하곤 했었지.
하지만 몸이 힘든 것이 아니라 네 마음이 무너지고 힘들었음을 더 빨리 알아채지 못하고, 샘이 먼저 손을 내밀지 못했음을 반성했단다.
왜 공부는 하지 않고 멍때리고 있느냐고 집중해서 공부 하라고 잔소리만 했지, 멍때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보려 하지 않았던 선생님의 게으름을 반성했단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와중에도 반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며 걱정하는 네 마음 씀씀이를 보고, 우리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알지 못하고 있음을 반성하게 되었단다.
B,
오늘 너는 선생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했단다.
겉으로만 보이는 너희들의 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어쩌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너희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단편적인 모습의 조각들일 뿐이라는 것을.
너희들의 아픔과 상처와, 알알이 영글어 가는 꽉 찬 속마음들은 조회 종례 잠깐 그 몇 분만으로는 결코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다.
B,
힘들지? 그래도. 힘을 내 보자.
샘도 다시 정신을 차려야겠다.
너희들의 겉모습만 훑어보다가, 너희들의 겉사람만 보고 이야기하다가 샘의 품을 떠나보내는 일 없도록.
너희들의 속사람과 만나고 너희들의 진짜 속마음과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들. 그 시간들을 만나기 위해 있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어 만들어 내야겠다.
그러고보니 자꾸만 샘에게 눈빛을 던지던 D와 S와 또다른 H의 얼굴이 눈앞에 스쳐지나가는구나.
B,
힘든 시간 속에서도 너 자신을 이처럼 예쁘고 사랑스럽게, 바르고 곱게 지켜온 네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힘들겠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씩씩하게 꿋꿋하게 잘 살아보자.
사랑한다. 그리고 축복한다. 그리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