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동안은 정말 ‘푹’ 쉬어야만 새로운 마음으로 새학기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정말 주구장창 푹~~~쉬었다.
방학마다 무슨 행사처럼 하던 서랍장 정리, 싱크대 아래 정리, 책장 정리, 유리창 닦기 등등 모든 일을 모르는 척 눈감아두고 거슬려도 애써 외면하며, 청소년 도서를 읽으며 낮잠도 늘어지게 자며 게으르게 보냈다.
그런데, 업무분장 발표가 다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새학기를 며칠밖에 앞두지 않은 2월 말의 어느 날부터 이유를 알 수 없이 가슴이 두근두근 콩닥거리고 소화도 잘 안 되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의 정체는 뭘까 곰곰이 내 안을 들여다보니 새학기를 앞둔 ‘두려움(70%)+긴장감(20%)+설렘(10%)’이라는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이런 두려움과 긴장감과 설렘을 차분하게 진정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그건 바로 ‘당장 수업준비’ 그리고, ‘올해 할 업무 흐름 잡아두고 큰 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미리 해두기’ 가 정답이었는데 문제는 마음과 반대로 몸은 더더욱 움직이기 싫다고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메일함에 도착한 정체불명의 메일. 제목이 ‘배움, 나눔, 실천, 첫 번째 이야기’다.
이건 뭘까 기윤실 교사모임에서 보낸 건가 싶으면서도 선뜻 열어보지 못한 것은 요즘 이상한 해킹메일이 많이 온다고 주워들은 기억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목이 너무 구체적이고 내가 관심 있었던 것인지라 메일을 열어보니 ‘국어교사 모임 안내’메일이었다. 친구에게 메일 내용을 전송하고 “같이 갈까?” 메시지를 보내니 흔쾌히 좋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개학을 코앞에 둔 2월의 마지막 날을 연수로 보내다니 뭔가 더 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급하게 몰려오면서 갑자기 피곤함도 휘몰아쳐오는 것이 ‘연수는 무슨 연수야~쉬어~~~’하고 작은 악마(?)의 속삭임이 내 마음 속에서 들려왔다.
한참을 망설이다 연수에 갔다.
아, 연수에 가서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공동체’ 없이 살아왔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공동체’ 없이 살아오다보니 힘에 겨웠었구나. 지쳤었구나. 고갈되었었구나 하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다.
선생님들이 어쩌면 이렇게도 열정적이신지, 어떻게 저렇게 멋진 수업을 꾸려나갈 수 있는지 자극도 받고, 도전도 받으면서 마음이 가벼워짐과 동시에 어깨와 머리는 무거워져서 돌아왔다. (ㅠ.ㅠ)
집에 돌아와 연수에서 배운 내용들을 쭉 다시 훑어본 후, 나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고민만 하다가 머리가 너무 무거워 머리도 식힐 겸 장식처럼 꽂혀있던 좋은 교사 3월호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발견한 3월 첫 수업 자료! 이건 왠지 나도 해 볼만 하지 않을까 싶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늘 ‘조용한 교실’을 좋아했기에, 모둠별로 학습지를 푸는 것 이외에는 수업시간에 동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었다.
따라서 이런 활동 중심 수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내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아이들이 심하게(?) 떠들어도 인내심을 갖고 바라봐 줄 수 있는 용기, 옆 반에 피해가 갈까봐 노심초사하지 않고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용기’, 너무 산만해져서 정작 수업할 때 아이들이 집중하지 못할까봐 염려되는 마음을 내려놓는 ‘용기’가 말이다.
그런데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올해 1학년을 가르치게 되었다는 사실!
초등학교에서 이제 막 중학교에 올라온 파릇파릇한 아이들은 나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을 것이기에 내가 어떤 짓(?)을 하더라도 잘 따라와 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과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둥글게 둘러앉아 ‘수고했습니다.’를 읽어주고, 이 시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얘기해보자는 말에, ‘그동안 살아오느라 수고했다고요.’, ‘초등학교 다니느라 수고했다고요.’ 등등의 말을 하며 아이들도 나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를 즐겼다.
1학년이라서 이토록 자유롭게 말을 잘 하는 것인지, 그동안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아서 아이들이 말을 못했던 것인지...어쨌든, 아이들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눈 후,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붑니다~!’ 놀이를 시작했다.
약간의 어색함은 남아있던 아이들이 ‘바람이 붑니다.’를 시작하는 순간, 자리에 앉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머리카락 휘날리게 뛰어다니고 깔깔거리고 키득거리면서 교실엔 활기가 돌았다.
그리고 그 순간 아이들 사이사이를 함께 뛰어다니는 순수함과 풋풋함, 그리고 수줍음과 열정. 그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바람이 분다, 너희들이 좋다.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조금만 더 하자며, 최후의 1인을 뽑을 때까지는 더 하자고 조른다.
아이들이 뭔가를 더 하자고 졸랐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이렇게 밝고 환한 표정의 아이들을 얼마나 오랜만에 마주하게 되는 건가.
마음에 살랑살랑 봄바람이 분다. 아이들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아이들이 좋다.
아이들과 수업하다 문득 아들 녀석의 일기가 생각났다.
개학 첫날 학교에 다녀온 첫째 아들이 쓴 일기다. 첫날부터 선생님이 얼마나 좋았으면 이렇게 “좋다”는 말을 많이 썼을까. 내가 만나는 아이들도, “내일이 빨리 되면 좋겠다. 학교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면 얼마나 신날까.
아이들도. 나도.
이제부터 교실에 따뜻한 바람, 부드러운 바람, 사랑의 바람이 살랑 살랑 불게 되기를.
그래서 마음 속 일기장에, ‘오늘도 좋다. 내일도 좋을 것 같다. 학교가 좋다. 수업이 좋다. 선생님이 좋다.’라고 쓰는 아이들이 생겨나게 되길 꿈꿔본다.
2017.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