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때, ‘뭐 읽을 만한 책이 없나?’하고 책장을 뒤적이는데 어느 책에선가 책꽂이에선가 작은 종이쪽지가 툭 떨어졌다. 우리 아이들이 평소에 “엄마! 사랑해요!”라거나 “엄마! 뭐 갖고 싶어요!”라고 쓴 쪽지를 자주 건네곤 하기에 또 그런 쪽지려니 하고 집어서 정리하려고 보니, 어라? 글씨가 너무 곱다.
아! 이게 언제 적 쪽지인가? 오래 생각해낼 것도 없이 바로 떠오른다.
첫 발령지인 중학교에서 세 번째 담임을 하면서 받았던 쪽지다. 쪽지를 읽음과 동시에 이 아이의 목소리와 말투와 웃는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때 은혜는 내게 무엇을 갖다 주었던 것일까?
이제는 학생이, 학부모가, 마음을 담아 정성을 담아 정성껏 만든 소박한 김밥 한 줄 받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이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어느 날은 나보다 덩치 큰 콧수염 난 중3 녀석이 아침부터 쌌다면서 유부초밥을 가져다 주기도 했고, 자기들이 먹고 싶었던 과자들을 책상 위에 놓아두는 일도 흔했다. 하지만 언. 제. 부. 터. 인. 가 더 이상 내게 이런 일은 ‘흔치 않은’ 일이 되었다.
아직도 첫 발령지에서 만났던 아이들을 떠올리면 설레고 꿈꾸듯 행복한 것은 그 아이들에게 내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으며 그랬기에 추억도 많이 쌓였고 정도 많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에서 4년을 마치고 바로 결혼을 하고 다른 학교로 옮기고 곧이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면서 나는 어느샌가 ‘아줌마 선생님’이 되어있었다.
마음은 아직도 그 시절이나 똑같다고 자부하고 있었으나 아이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약간의 거리감이랄까 조심스러운 어려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세 아이의 엄마로, 교사로, 아내로, 주부로 살아가는 일은 그리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나 아이들이 어렸을 땐 더더욱 그러했다. 처음 해보는 ‘엄마’라는 역할에 나 자신도 좌충우돌해가면서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중이었기에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신규 시절처럼 온 열정을 쏟아 붓기에는 내 열정과 체력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아이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히’ 관심 갖고 ‘적당히’ 지내는 것이 내게 주어진 이 모든 과업을 무사히(?) 감당하며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아이들과 ‘적당히’ 지내왔다.
때론 아이들이 ‘너무 가까이’ 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고맙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업무에 치이고 삶에 치이고 일상이 팍팍하게 여겨질 때면 순간순간 아이들과 부대끼며 얻는 그 따뜻한 에너지가 그리웠던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이 어려서 아이들 양육에 집중하느라, 또 때론 업무를 해달라는 부탁 때문에 비담임으로 살아온 날들이 많아지면서 그리고 아이들과 ‘적당히’ 지내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에 ‘감’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교과에서 만나는 아이들과도 담임하는 반 아이들처럼 그렇게 같이 잘 지내면 되었을 터이나 여덟 반이나 되는 아이들을 일주일에 두 번 보면서 깊은 관계를 맺고 에너지를 주고받는 일은, 그리고 그렇게 에너지를 쏟아내기에는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것마저도 핑계 인지도 모른다. 그저, 어쩌면 아이들은 내게 ‘업무’와 ‘가정’에 밀린 3순위에 불과했었는지도 모른다.
특성화고에서 8년 근무를 마치고 중학교로 내려오기 전. 아이들이 내 걱정을 했었다.
선생님! 중학교로 가신다면서요?
응.
큰일 났네요.
그러게. 큰일이다.
중학생들 무섭다는데, 어떡하냐?
너희도 중학생 때 무서웠어?
그렇죠.
왜? 상태가 어땠는데?
그냥... 인간이 아니었었다고 보시면 돼요.
아!……
아이들의 걱정과 염려를 받으며 중학교로 내려온 지 올해로 벌써 3년 차. 첫해엔 중3을 하면서 ‘몇 년 만의 담임이란 말인가 ’ 혼자 감격하며 너무 신이 나서 담임을 했다.
그리고 ‘도대체 어느 누가 중학생을 무섭다고 했나!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데!’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잃어버렸다고 느꼈던 ’ 감’도 아직 살아있음을 느끼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그 말은 섣부른 말이었음을 작년에 나는 깨닫고야 말았다. 작년, 비담임에 난생처음 중2를 맡으면서 내가 아이들을 이렇게 ‘미워’할 수 있었다니 나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없는 나의 좁은 마음 그릇을 부끄러워해야 했으며 어떤 반의 교실 문을 열 때면 심호흡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소심함이 내게 있음을 발견했다.
그렇다. 내 안에는 어쩌면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교사’라는 오만이 숨겨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오만’은 이제 너무 흔하게 쓰여 마치 관용어처럼 느껴지는 ‘북한군도 중2가 무서워 못 쳐들어온다.’는 이 말 중, 그 ‘중2’ 앞에서 처절하게 무너져 내렸다.
방학 동안 연수를 들었다. 독서교육에 관한 연수였는데 이 연수를 들으며 내가 그동안 얼마나 ‘게으른’ 교사이며 ‘열정 없는’ 교사, 게다가 ‘사랑’마저 없는 교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청소년 도서를 읽어나가며 그 속에서 아이들의 감추어진 수많은 모습들을 만났다. 그리고 한참 고민 많고 생각이 많은, 그래서 홀로 서 있기에도 버겁게 흔들리는 이 중2들을 이해하고 보듬으려는 마음이 내게 너무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개학을 앞두고 꿈을 꾸었다. 새 학기 시간표가 나왔는데 내 시간표가 2학년에 배정되어 있는 것이었다. 꿈속에서 난 소리쳤다.
“아니! 교과 협의회도 안 했는데 왜 제가, 왜!! 2학년이냐고요!!!!”
아무리 반성을 하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도 작년에 힘든 아이들과 만났던 시간이 어쩌면 내 안에도 상처로 남아있어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올해는 1학년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아! 새싹같이 파릇파릇 싱그러운 아이들. 잘할 수 있을까 염려는 되지만 달라진 것은 하나 있을 테니 그래도 두려움은 덜하다.
“내가 너무나 부족한 교사”임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
그래서 “날마다 배움”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그렇기에 나는 올해는 더 열심히 ‘배우고’, ‘사랑하고’ 자라나리라는 것. 이런 마음으로 아이들과 열심히 부대껴 보리라는 것!!!
2017. 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