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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햇살씨 Oct 15. 2021

무너진 기대

H는 2학년 전체를 통틀어 목소리가 가장 큰 여학생이자, 어떤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건 전혀 굴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과 하고픈 일은 꿋꿋하게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끈기(?)를 가진 아이이다.


이를테면, 수업 중이라도 갑자기 물티슈가 필요하면 뒤에 사물함으로 가서 물티슈를 찾다가 없으면 맨 앞자리에 있는 친구에게 가서 선생님보다 더 큰 목소리로 '물티슈 있어?'라고 당당하게 묻는 대담함(?)을 지니고 있다. 


그 와중에 선생님께서 뭐하는 거냐고 자리로 돌아가라고 하면, 자신이 물티슈가 필요해서 그런거라며 물티슈를 끝까지 챙긴 후 자신의 자리로 가는 길에 친한 다른 친구에게 장난까지 치면서 가는 여유까지 겸비했다.

큰 목소리로 조용한 교실을 뒤흔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애써 아침 자습시간을 조용히 만들어 놓으면 저 멀리 앉아있는 친구에게 큰 소리로 꺄륵꺄륵 웃으며 "야! 쟤 머리 좀 봐봐. 겁나 웃기지 않냐?" 하면서 너무도 당당하게 이야기를 해서 삽시간에 아이들의 시선을 끌어버리는 재주를 가지셨다. (ㅠ.ㅠ)

이야기 하자면 끝이 없지만, 이렇게 목소리 크고, 5분 이상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힘들어 하는 아이를 자습시간 달랑 10분동안이라도 조용히 하도록 만드는데 세달이 넘게 걸렸다.

이제 아침 자습시간이면 몸을 낮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가만히 있는다. 하지만 여기에서 결코 만족하지 않는 집요한 담임인 나는 제발 []좀 읽자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데.


드디어 오늘. 그녀가, 자리에 털석 앉더니, 평소처럼 멍을 때리는가 싶더니. 가방에서 웬 책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와! 드디어 내 잔소리의 결실(?)이 맺히는 순간이구나!



혼자 속으로 감탄하고 놀라워하며 그녀를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가방에서 초록색 표지의 책을 꺼낸 그녀는 곧이어 안경을 썼다.(평소에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와우! 안경까지 쓰고 본격적으로 책을 읽겠다는 거지?


기대에 차서 그녀를 계속 바라보았다. 안경을 쓰고 나와 잠깐 눈이 마주친 그녀는 책을 오른손에 들더니!!! 들더----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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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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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질 하기엔 좀 무거워 보이는 책이었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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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저러다 읽겠지, 설마...계속 부채질을 하기야 하겠어?' 라고 생각했으나. 
그녀는 역시나 나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종이 울릴 때까지 부채질을 계속 했다.
.
.
.
.
2학기엔
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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