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아픈 사랑
점심시간이 끝나가는데 갑자기 J군이 목소리를 낮게 깔고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쌤, 저 조퇴 좀 시켜주세요.
쉬는 시간마다 배아프다며 배를 움켜쥐고 찾아와서 조퇴시켜달라고 연기를 하는 능청맞은 H군이 오늘도 몇 차례나 다녀간 뒤라, 컵을 씻으면서 장난으로 받아쳤다.
왜? 너도 H군처럼 아파?
목소리를 왜 낮게 깔고 그래? 무섭게시리...
하지만,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J군에게 뭔가 심각한 일이 있음을 눈치 채고, 장난스런 목소리를 거두고 말했다.
일단 쌤자리 옆에 앉아봐.
얘기하자.
커피를 타서 자리에 앉아 J군과 마주보았다.
무슨 일인데?
무슨 일인지는 말 못하겠는데요,
그냥 보내주시면 안 돼요?
간절한 눈빛으로 호소하는 J군을 데리고 칸막이가 쳐져있는 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왜 그래?
누구랑 싸웠어?
네...
J는 대답을 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여자 친구랑 싸운 거구나?
심각해?
심각하단다. 어느 정도 심각하냐고 물으니, 헤어지게 될 것 같단다. 그 말을 하면서 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동안 몇 차례나 이런 위기들이 왔었단다. 하지만 이번엔 왠지 진짜 헤어지게 될까봐 두렵단다. 더 많이 좋아해서 아파한다.
여자 친구는, J가 너무 잘해주는데 자신은 그렇게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부담스럽고 그래서 힘들다고 했단다. 잘해주지 못해도 그냥 여자 친구로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J는 그래서 괴롭고 슬프단다.
도저히 학교에 있을 수가 없다며, 집에 보내달라는 J군에게 엄마가 허락하시면 보내주겠다고 했더니 전화를 해보겠단다.
J군의 엄마는 껄껄 깔깔 웃으시며, 그런 일로 조퇴를 하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평소에 엄살도 없고, 모든 생활이 모범적이고, 남자답고 카리스마도 있어서 남학생에게든 여학생에게든 인기가 많고 신뢰를 얻고 있던 J군이었기에,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사실...원하는 대로 집에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
엄마의 No라는 대답에도 불구하고, 집에 가고 싶다며, 도저히 교실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J군에게 책을 한 권 건넸다.
책을 읽을 기분이 아니라더니 책 제목을 보고선, 이 책을 예전에 여자 친구가 읽는 것을 봤다며 읽어보겠단다.
이금이 선생님의 '첫사랑'
두 시간 동안 교무실에 앉아 책을 읽고, 종례를 받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J.
J의 가슴앓이를 지켜보던 (J의 여자 친구 반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 뜨겁다.
나도 저렇게 뜨거웠던 적이 있었나...
퇴근길, J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J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면서 엄마에게 전화해서 꺼이꺼이 울었다고.
너무 많이 좋아해서, 그 좋아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해서, 그것이 때론 집착이 되고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면서도 너무 좋아해서 많이 아픈 J.
이 아픈 사랑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 2. 위대한 사랑?
어제, 지각해서 시를 외우며 내일은 지각 안 할 거라며 선전포고를 하고 갔던 M.
아침 출근길. 뒤늦은 모닝콜을 했다. 지금까지 M이 내 전화를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도대체 왜 안 받는지, 어떻게 담임의 전화를 안 받을 수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이젠 '그런가보다..또 안 받네.' 하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처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것도 벨이 울린 지 세 번도 안 되어 받으며, 싹싹한 목소리로,
저 지금 가고 있어요!!!
라고 대답한다.
이것이 정녕 M이란 말인가!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래! 드디어! 얘도 내 맘을 안 거야!!!’ 라고 믿고 싶었으....나, 그럴 리가 만무하지.
나보다 일찍 교실에 들어와 앉아있는 M의 모습이 낯설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어?
내 말에 베시시 웃으며 말한다.
남친이 깨워줬어요!
'그럼 그렇지...담임의 마음을 알긴......(ㅡ.ㅡ)'
섭섭함을 감추고 말했다.
그래? 대단하다!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하군!
히힛!
좋댄다.
네 남친 전화번호 좀 줘봐!
왜요?
날마다 너 깨워서
지각 좀 안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게.
히히히히~~
그렇다. 그녀에게 모닝콜을 할 것이 아니라 남친을 공략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남친이 우리학교 학생이 아닌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담엔 그냥 학교커플이 되길 바라야 하는 걸까?
p.s.
그녀의 남친을 믿고 아침에 모닝콜을 안 했는데, 점심을 먹고 난 지금 이 시간까지 M은 전화도 받지 않고 아무 소식이 없더니, 앞머리에 빨간 롤을 말고 1시가 넘어서 나타났다.
야!
너 빨리 남친 전화번호 좀 줘봐!
왜요!
네 모닝콜 제대로 좀 하라고
전화 좀 해야겠다!
히힛! 전화해서 깨워줬는데
제가 못 일어난 거예요!
학교를 마음대로 다니는 M.
그러나 사랑에 빠져 마냥 행복한 M.
M의 눈에서 반항이 눈빛을 가져간 남친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제대로 좀 깨워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