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where Jan 12. 2022

sonder in 제주

sonder in 협재 겨울


제주를 왔다.

들어온 다음 날부터 이번 겨울 최강 추위가 찾아왔다. 눈보라 때문에 걸어 다닐 수가 없어서 종일 숙소에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바람은 멈췄지만 기온은 더 내려가 있다.

종일 하얀 이를 드러내고 울부짖던 바다가 많이 진정이 되었다.

협재 해변에서 오래 걸어 지친 다리를 쉴 겸 카페를 들어와 차를 마신다.

옆에 있던 잡지를 펼치니  sonder 란 말이 있다. sound와 wonder를 합쳤다는 신조어다.

그런데 그 뜻이 너무 의미심장하다.


sonder : 주위를 스쳐가는 세상 사람들 모두 나와 마찬가지로 모두 복잡하고 강렬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깨달음.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내게 있어 다 오브제, 대상일 뿐이다.타인의 인생은 내게 마치 스크린 속 드라마 정도의 거리를 지닌다. 그런데 sonder라니 ...


sonder와 정 반대의 느낌을 나는 여행 중에 많이 받는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남처럼 느껴지는 것.

먼 나라 어느 도시 외곽이나 국경지대를 차로 지나갈 때, 스쳐가는 집과 그 사이 서있거나 걸어가는 사람들.

혹은 어느 더운 지방, 동남아시아 어디쯤,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헐벗은 아이들이 서있거나 놀고 있을 때.

그들을 그저 물체처럼 물끄러미 보다가

내 자신도 그렇게 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냥 그렇게 아무 상관없이 지나가는 대상처럼 내가 느껴지는 순간.

나도 그냥 저 사람들 중 하나구나 하고 객체로 먼지처럼 느껴지는 순간.

나에게 씌워진 모든 무게 중심이 사라지고,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지구상 어느 구석에 있는 사람 중 단지 하나가 되는 느낌인 것이다.

그런 느낌이 올 때 가볍다. 무거운 자아에서 벗어나는 느낌.

sonder의 지극히 반대되는 느낌, 이거는 뭐라 해야 할까.

sonder도 신조어라니까 내가 하나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duspear 쯤……dust와 disappear가 만난 걸로….


애월 북쪽에서 한담까지 걷다가 지쳐서 시내버스를 타고 협재로 올 때,

버스에 타니 많은 사람들.

날씨가 추워 각종 외투를 무겁게 걸친 사람들이 가득하다.

비닐 봉다리를 발치에 둔 사람, 가방을 끌어안은 사람.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본다. 무슨 로타리, 무슨 고등학교 앞, 무슨 회관 앞 등등을 지나.

나는 그 거리, 그 골목들 어딘가 작은 창문 안에 있을 어느 사람과 그냥 같다.

우리 집에서 내 옷에 묻어온 먼지 한 티클이 그때 마침 열린 버스 창문 너머로 날아가 골목을 돌아 그 작은 창문으로 들어가

그 사람 어깨 위에 앉는다.  뭐가 다른가..

카페 바다를 향해 난 창 앞에 있는 저 기괴하게 큰 장미 꽃송이를 sonder flower라 하고 싶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