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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where
Sep 06. 2024
확실히 이상한 날이었다.
음악회장에서 가져오던 서울시향 매거진을 지하철역 오던 길 어두운 골목, 종이 더미들 속에 내려놓고 왔다.
어차피 집에 가서도 읽지 않을 것 같으니 ᆢ 당분간 음악회에 대해서 안 볼 것 같다.
음악회장에 일찍 들어가 앉아있는데 안내원이 와서 내 자리를 확인했다. 자리가 중복된 것 같다고.그럴 리가 있나 하고 확인해 보니 내가 잘못 앉았다.
이럴 수가 ᆢ표를 잘 못 읽기는 처음이다.
지휘자는 북구 사람답게 키가 엄청 컸다. 그런데 한쪽 발에 기브스를 한 채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서 지휘를 시작한다. 그의 지휘는 정확하고 섬세했으나 격정적인 부분에 의자에서 중간중간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 불안했다.
뒷자리에서 사탕껍질 뽀시락 거리는 소리가 몇 번 들렸고 앞자리의 엄마와 딸은 자주 속삭였다. 신경이 조금 쓰인다.
처음 듣는 핀란드 작곡가의 <겨울하늘>이라는 곡은 현대곡 특유의 사운드와 작은 타악기들이 많이 사용된 묘한 멜로디로 흘러 나왔다. 북구의 겨울이 저런가.
여기저기서 간헐적으로 물건이 떨어지거나 기침 소리가 들린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꽤 앞자리에 앉았던 사람 하나가 일어나 옆 문으로 슬쩍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다. 앞자리라 당연히 눈이 그를 따라가게 된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독일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한다. 해설에서 보자면 서울시향에서 2019년 그해의 음악가로 선정했다고 한다. 과연 엄청난 에너지로 연주한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를 보다 보면 가끔 엉뚱한 생각이 떠오른다. 그 독주자 뒤로 같은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수십 명 앉아있는데 독주 바이올린은 어떻게 저리 구별되어 들리는지, 물론 연주 내용 자체가 다르니 그렇기도 하지만 처음 들었을 때 작게 들리던 소리가 갈수록 선명하고 크게 들리는 것도 신기하다.
독주 악기 혼자 카덴차 부분을 연주할 때 활을 무릎에 내리고 듣는 바이올린 단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ᆢ
음악에 따라 온몸으로 표현되는 동작에 마음이 뭉클하다. 그가 내는 소리가 아닌 앞 뒤로 혹은 위아래로 움직이는 그 모습에 왜 갑자기 마음이 울컥했는지 모르겠다.
그 큰 움직임 속에서도 바이올린은 그의 몸인 것처럼 단단히 그에게 붙어있다.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음악이라는 것에 울컥하게 되는 것인지.
큰 환호 속에 협주가 끝나고 끊이지 않는 열렬한 박수 때문인지 그가 앵콜곡을 연주한다.
열기를 가라앉히고자 함인지 앵콜곡은 차분하게 정제되어 있는 곡이다. 숨죽이고 집중해서 듣게 된다. 그런데 문득 불안하다. 이 고요를 깨는 소음이 나면 어떡하나. 얼핏 보니 청중석이 거의 가득 찼다. 서울시향인지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어찌 다 한 사람인 것처럼 고요할 수 있겠는가 ᆢ집중도가 다 다를 테고 음악에 집중되지 못하면 자신이 어떤 소음을 내는지도 모르고 움직이게 된다.
그런 불안을 느낀 것은 내가 이미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무대를 떠난 굴렌굴드가 이해된다. 음악외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되는 음악회라 하는 시공간.
다행히 앵콜연주가 무사히 끝나고 중간휴식이 시작되었는데
갑자기 객석에서 큰 언쟁이 벌어졌다. 소리는 갈수록 격해진다. 살다가 이런 일은 처음이다.
앞자리 관객이 연주회용 망원경을 눈에 댄 채로 줄 곧 이리저리 움직였다고 뒷자리 관객이 격하게 소리 질렀다.
그 사람은 아마 분노 때문에 거의 음악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앞자리 사람은 자신의 움직임이 뒷사람을 방해하리라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연주 동안 누군가의 핸드폰도 울렸고 심지어는 어떤 말소리도 나왔었다. 유튜브인듯한 ᆢ
로비로 나가서도 언쟁이 계속되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 사람들은 다시 들어와서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 같다.
휴식이 끝나고 오케스트라 본 메뉴인 교향곡이 연주된다.
쇼스타코비치 15번. 다양한 타악기가 많이 등장하고 현대곡이 늘 그렇듯 편안하기보단 실험적인 느낌이다.
평소 교향곡을 즐겨 듣진 않아도 실황에 오면 잘 듣는 편인데 이상하게 맘이 불편하고 계속 불안하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도 불안하고 여기저기 그치지 않는 약간의 소음도 그렇고.
악장을 구분할 수 없기도 하고, 4악장이 끝날 때는 전형적으로 끝이라는 게 느껴지는데 이 곡은 그렇지도 않았다. 모든 악기 소리가 잦아들며 지휘자 손이 거의 밑으로 내려오고 소리의 여운이 사라지는데 갑자기 핸드폰 알람소리가 크게 들렸다. 믿을 수 없이.
그런데 더 믿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이 교향곡의 끝이었다. 소리의 여운이 사라지면서 끝이었던 것이다. 거의 잦아들었는데 핸드폰 소리가 울려버린 것이다. 그래도 지휘자는 끝까지 기다리다가 손을 멈추고 본인이 끝을 알려주려는 듯 크게 한숨을 쉬고 몸을 늘어트렸다.
당황한 청중들은 그 가운데서도 열렬히 환호하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다행스럽게도 뒤편 자리였던 나는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박수도 환호도 곧 진행될 오케스트라 단원이나 지휘자의 인사도 보기 힘들 것 같았다.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좀 멀리 있는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당분간 나는 음악회를 안 올 것 같다.
현장음악회의 엄청난 감동은 늘 이런 사소하지만 신경거슬리는 음악외적인 요소와 같이 온다.
음반을 들으면 완벽한데 왜 굳이 우리는 음악회를 오는 것일까.
당분간은 문화에서 멀어지기로 해본다.
내가 직접 하는 거 빼고는.
도착해서도 출구를 잘 못 나가 돌아오고 ᆢ
이상한 밤, 이상한 날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