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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Sep 23. 2024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모차르트

리스본행 야간열차

영화는 예전에 봤지만 책은 작년에야 읽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얼마나 여운이 깊던지 그 향기에 취해 1년 새 리스본을 두 번이나 갔다. 한 번은 산티아고 걷는 여정 속에서, 또 한 번은 스페인 여정 속에서.

책 속에 나온 한 인물이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마리아 조앙 피레스.

젊은 날 포르투갈 독재정부에 의해 심한 고문을 당해 심신이 피폐해진 그 인물이 늘 듣던 피아니스트였다.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피아노를 치는 게 그의 낙이었다. 숨어서 반독재 운동을 하던, 도무지 피아노를 칠 남자로는 보이지 않는 그의 투박한 손을 비밀경찰이 뭉개뜨려버린다. 그의 집에 들어갔다가 뜻밖의 피아노를 봤기 때문이었다.


책에서 나온 장소와 인물들을 짚어가며 리스본을 돌아다녔다. 그 소설의 진짜 주인공이라도 할 수 있는 프라두의 가족이 묻혀있다는 묘지와 거리들.

인생에서 이탈하듯 리스본을 찾아간 그레고리우스가 걷는 거리와, 그가 찾는 인물인 프라두가 살았던 곳들이 얽히며 실제와 허구가 헷갈렸다. 마치 프라두가 실제 인물인 것처럼 묘지에서 그의 묘를 찾을 뻔했다. 그 책에 나온 피아니스트는 또 그냥 허구의 인물이려니 했는데 실존인물이었다.


그 마리아 조앙 피레스가 지난주 금요일 예술의 전당에서 독주회를 했다.  한 동안 음악회를 가지 않으려 했으나 이 연주회는 몇 달 전에 예약해 놓은 것이었다.


올해로 팔순이 된 그녀의 음악은 너무 아름다워서 눈과 귀를 뗄 수가 없었다. 드뷔시와 슈베르트에서 쇼팽과 모차르트로 중간에 프로그램 내용이 바뀌었다고 메시지가 왔었다. 나이가 있는지라 컨디션이 안 좋은가 싶었다. 모차르트와 쇼팽 녹턴이 막연히 힘은 덜 들것이라는 생각에.

쇼팽 녹턴이야 언제 들어도 아름답지만 그녀가 연주하는 음악은 절제와 단련으로 단연코 경륜에 찬 노년만이 낼 수 있는 소리였다.

모차르트는 탄복을 하면서 들었다. 팔순이라는 나이에도 저렇게 기민하게 손이 굴러가는구나 싶어서 걸핏하면 나이 탓하던 내 입이 쏙 들어갔다.

물론 세계 거장 반열에 있는 그녀가 이미 젊은 나이에 이루어 놓은 테크닉이 나이 앞에 쉽게 퇴보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한 에너지의 곡을 연주하기엔 이제 힘이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세월이 주는 성숙과 나이에 비례하는 절제미는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마지막 연주가 끝나고 가지런히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허리를 90도까지 꺾으며 인사하는 그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나이 듦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생 앞에 깊게 허리 숙이는 그 겸손함과 손을 모은 따스함이 그대로 전달되어 왔다.

이미 심장수술을 겪는 등 그녀의 건강은 연약하다. 언제 죽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에 이미 이르렀다. 그럼에도 매일 같이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을 할 것이다. 이제 뭔가 이루고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 없이 그저 자신의 손가락 밑에서 나는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 깊이 경외감이 느껴졌다.

늘 숏커트 머리와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로 무대에 올랐으며, 드레스를 입지 않고 간결한 옷을 입고 연주한다.

평생 그녀를 따라다니던 모차르트, 슈베르트, 쇼팽 ‘스페셜리스트’란 평에 손사래를 치며 말한단다. “단지 그들의 음악을 좋아해 공부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아침의 스타벅스를 나가면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피아노를 치러 가야겠다.

천변을 지나고 거리를 지나 레슨을 받는 평생 대학의 연습실로 갈 것이다. 가서 잘 되지 않는 빠른 왼손 반주를 인내심을 갖고 연습해야겠다.

여전히 3,4번 손가락 사이에서 균형이 깨지지만 고르게 소리가 나올 그 순간까지 해봐야겠다. 나는 아직 60이 되지 않은 나이 아닌가.


아름다운 사람. 마리아 조앙 피레스를 들으며 한껏 용기를 낸다.

예술의 힘은 이런 것이며 예술가들의 힘은 이런 것이다.



소설 마지막 부분.

유럽의 땅끝 Finisterrae에 이르러 그레고리우스가 동네 어부들에게 삶이 만족스러운지 묻는다. 어부들의 대답.

“만족하냐고? 다른 삶도 모르는 걸!”

어부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는 그칠 줄 모르는 웃음바다로 변했다. 그레고리우스도 얼마나 흥겹게 웃었던지 눈물이 흐를 지경이었다. 그가 어느 어부의 어깨에 손을 얹어 바다 쪽으로 돌려세우고는, 돌풍에 대고 소리를 질러댔다.

“계속 직진! 오로지 직진! 아무것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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