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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Oct 25. 2024

튈르리에서 커피 한 잔

가을이 가을 가을

오랑주리 미술관이 예약되어 있어 두 시간 전에 길을 나선다.

걸어서 한 50분 정도 거리니 천천히 걷고 숲에서 좀 앉았다 가려고 시간을 넉넉히 잡았다.

늘 그렇듯 문을 열고 나가 들이마시는 아침의 첫 공기는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지 걸음이 가뿐하다. 햇볕이 셀룰로판지처럼 창창 금빛 소리가 날 듯하다.

투르넬르 다리 위 성 쥬느뷔에브가 파리의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

센강 좌안 쪽 강변을 따라 걸으며 도로에 있는 좌판들을 구경한다.  알록달록 스카프 노점 사진을 찍으니 주인이 함박웃음을 웃으며 스카프를 권한다. 워낙 스카프를 좋아해서 사고 싶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 만지작 거리다 누구라도 눈치채는 거짓말, 다시 오겠다고 하며 내려놓는다.

아직 관광객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 한가히 이 구역을 지나갈 수 있다.

오늘도 복구 중인 노트르담 성당의 거대한 보호막엔 공사에 참여 중인 사람들을 크게 실어놓아 그 사람들이 마치 내 친척이거나 이웃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조각가, 기록가, 지붕수리공, 전기기술자 이리 실려있으니 이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매달려 일하고 있는 이 성당이 어서 회생되기를 바라본다.

유명하거나 거대한 일도 이렇게 개인적으로 접근하면 내 일처럼 느껴지며 마음이 간다. 성당 반대편으론 도로 공사 보호막에 복구의 과정이 자세히 나와있어 사람들이 죽 따라가며 그걸 읽는다. 그냥 가림막 쳐놓고 일을 진행시키는 게 아니라 자세히 다 알려주고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심리적으로 동참하게 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그물망처럼 엮여 있어  나와 관계없는 일은 없다. 내가 모른척해도 실은 어디선가 굶거나 전쟁으로 피 흘리는 사람이 있다면 다 내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올 것이다. 나비 날갯짓이 일으킨 파장이 돌고 돌아 거대한 파급을 일으킨다는 것처럼.

이 세상에 발 딛고 살고 있는 한은 이 세상일은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 너무 많이 아픈 세상이다. 모른 척 관심 없이 나한테만 눈을 고정시키는 삶이 그래서 늘 불안한 건지 모르겠다.


퐁뇌프 다리를 건너 루브르 마당을 지나 장사진을 친 관람객줄을 보며 내가 오늘 루브르를 들어가지 않는데 감사했다.

루브르를 지나 튈르리 숲으로 들어서는데 뜬금없는 대관람차를 본다. 왜 저 대형 기구는 세상 모든 랜드마크에 있는지 모르겠다. 보통 강변에 많이 있더구먼 진짜 좀 뜬금없다.

튈르리 정원은 정원이란 말이 무안하게 별로 나무가 많지 않다. 내가 막연히 숲을 생각했나 보다.

나무들 사이에 앉아 미술관 시간을 기다리기로 하며 커피를 한 잔 마신다. 테이블에 드는 햇볕으로 커피를 데우고 크레페 위에 흩날린 슈가 파우더가 가을 반짝이 금장이 된다.

오랑주의 미술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모네의 수련연작은  크기와 전시 구성이 대단했다.  배열이

360도 홀을 둥글게 돌며 이어지도록 모네가 디자인했다고 한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수백수천의 붓질이 쌓여있다. 큰 그림의 구도를 품은 채 수없이 작은 붓질로 채워 나가는 것이다.  최근 읽은 책 <보는 사람-화가>에서 화가를 그리는 사람이 아닌 보는 사람으로 규정한 것이 깊게 다가왔다. 그리기 위해 보고 또 보는 사람, 뚫어지게 보고 하염없이 보고 시간에 따라 빛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보고 또 보는 사람들. 깊은 응시 속에 사물을 만나는 사람들.

나는 그림은 잘 모르지만 갈수록 경도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저 경비원을 보면서 지금 읽고 있는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입니다>를 생각했다. 경비원도 파리지엥은 느낌이 다르구나 싶다. 메트 경비원들은 제복을 입는다는데 저토록 멋지게 서있는 오랑주리 경비원 이라니 ᆢ

어제 읽은 부분에서 본 농담이 생각난다. 어느 한 경비원이 그랬다는 ᆢ" 부인, 저희는 경비원이 아니라 경비 예술가입니다 "


한쪽 구석에 정물처럼 서있는 경비원이 실은 그 예술 작품들과 교감하고 자신만의 눈으로 작품을 받아들이는 내용들은 정말 좋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작품들에 둔해지고 무감각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부분을 읽는 중이다. 

사랑하는 형이 죽고 나서 깊은 슬픔에 빠진 그가 자신이 살던 뉴욕의 그 번잡하고 소란한 세상에서 그대로 멈춰서 있고 싶어서 잘 나가는 뉴욕 잡지 기자에서 경비원으로 직업을 바꾼다.


 멈춰 서고 싶을 때가 있다.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무작정 꾸역꾸역 가다가,

혹은 길인줄 알고 가다 보니 아닌 것 같을 때,

이유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을 때


멈춰 서고 싶을 때 못 멈추는 것이 어쩌면 진짜 비극인지 모르겠다.


메트 경비원은 오랜 시간 정물처럼 서서 수백년을 지나온 예술 작품들을 보면서 서서히 치유되어 간다.

 

피카소ᆢ오랑주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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