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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Oct 31. 2024

파리의 늦가을

여행과 일상

점점 기온이 내려간다. 계속 흐린 하늘이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파리다. 의기양양하게 파리의 가을을 보고 오겠노라고 혼자 나섰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치고 다운된다.

일주일이 넘어가건만 침대 시트도 바꿔주지 않아 데스크에 가서 말하니 곧 바꿔주겠다고 한다. 5 층에서 일하는 스텝들에게 말했는데 안 되니 데스크로 간 것이다.

나는 한 방에서 붙박이처럼 있고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고 난다. 오늘 새벽엔 눈을 떠서 책 읽을 수 있는 거실로 나오니 어지럽다. 혼자 여행 와서 아플까 봐 덜컥 겁이 난다.

낼모레 육십을 바라보는 사람이 넘 겁이 없나 싶기도 하다.

너무 무턱대고 걸어 다닌다. 파리가 원체 걸어 다닐만한 정도의 도시라서 지도 보며 까짓것 하고 걷다 보니 어제 귀갓길엔 무릎에 통증이 느껴졌다. 더구나 어제저녁에 예약한 성당 음악회 시간을 착각해 느긋히 빵집에서 빵 먹고 해찰하다 막판에 줄 곧 뛰다시피 해서 무릎이 더 힘들어졌다.

로댕미술관내 발자크 동상 ᆢ로댕제작

새벽엔 귀국 비행기를 하루라도 앞당길 수 있나 하고 알아보니 꽤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 거의 내가 지불한 비행기표만큼의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포기하고 그냥 원래 계획대로 까딱까딱 시간을 보내보기로 한다.

계획을 짤 땐 하루라도 더 있으려고 애를 썼는데 막상 와서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그 파리가 그 파리인 시간이 되었다.

이곳이 내 일상이라면 매일이 새로울 것도 없지만 지루할 틈도 없을 텐데 막상 여행자로 와서 있다 보니 다니는 게 한계가 있다. 결국은 여행자는 구경하는 사람이다. 살아나가는 삶이 아닌, 구경은 곧 흥미를 잃기 마련이다. 그리고 또 몸은 왜 이리 쉽게 지치는지 모르겠다. 아니 지치도록 돌아다닌다는 게 맞다. 숙소에서 달리 할 일도 없으니 밖으로 나가야 하고 나가니 여기저기 떠돌게 되고ᆢ

어느새 그게 그거 같은 시간들이다.

성당은 다 그게 그거고 궁전도 다 그게 그거고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다 그게 그거 같다.

Bourse de Commerceᆢ현대 미술 전시관


어제는 오죽하면 길 가다 갑자기 대관람차를 탔다. 일행이 없으니 한 칸에 혼자만 들어가게 해서 세 바퀴를 돌았다.

관대한 파리 같으니라구 ᆢ뭘 세 바퀴씩이나 돌리는지.

파리의 랜드마크 격인 곳들이 아닌 파리 시내 숨겨져 있는 듯한 곳들을 다녔다. 많은 갤러리 패세지들. 그리고 마레지구 내 여기저기들 ᆢ

Joffroy passage


Enough.  Enough, 소리가 나온다.

매일 똑같지만 늘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내 일상들로 돌아가고 싶다. 여행 나오면 찾아오는 증상이다. 빨리 돌아가고 싶다. 그래 여행은 이제 열흘정도가 최적인 것 같다. 오늘이 딱 열흘째다. 아직도 다섯 밤을 더 자야 한다.

밤이면 동굴 같은 침대로 들어가 커튼을 치고 세상 멀고 외딴곳 같은 그 한 줌 공간 속에서 뒤척이다 잠이 든다.

새벽에 눈이 뜨이면 잠시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다시 잠들거나 일어난다.

내일은 몽생미셸 수도원 투어가 있어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날이다. 그래도 파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 기대가 된다. 춥다 하니 옷을 따스히 입어야겠다.


가지고 온 책에서는 미켈란젤로 이야기가 나온다.

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그릴 때 그 많은 그림의 부분들을 수없이 연습해 본 스케치,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리는 동안 늘 뒤로 젖혀져 뼈가 굳는 듯한 자신의 모습. 벽화에 나온 수많은 인물을 다 책임져야 하는 자신의 막중한 작업량.

그럼에도 하루하루 작업량을 정하고 또박또박 해 나간다.

발가락 연습한 스케치들


도중에 너무 힘들어 그 일에서 손 떼게 해달라고 교황에게 읍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화가도 아니다'라고 읊조리며 노동자처럼 살아간다. 그 하루하루의 노동이 쌓여서 위대한 천장화 <천지창조>가 완성된다.

역사를 통해 찬미받는 그 위대한 걸작품을 마치고 미켈란젤로는 씁쓸하게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교황은 만족하지만 다른 것들은 스스로 바란대로는 되지 않았다고.

예술에 우호적이지 않은 세상 탓을 해본다.

 

예술사를 전공한 조카아이는 그 시스티나 천장화를 볼 때 울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이유를 정확히 듣지는 못 했는데 하루하루 노동이 피처럼 쌓이면  그것은 영원에 각인되는 무언가가  는가 보다.

천재도 울면서 수없이 연습하고 매일 같이 일하며 자신이 뭘 이루었는지 모르게 이룬다. 어쩌면 후세 사람들이 그들이 이룬 것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천재들은 단지 피로에 쪄들어 일만 하다 간 사람들인 것 같다.

오늘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수많은 그림들도 화가들이 하루하루 짜놓은 작업목표를 달성하면서 나온 그림 들일 것이다.


어서 일상으로 돌아가 아침마다 머릿속에 들어서던 그날그날의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무우채지를 담그고 겨울이불로 바꾸고 피아노 연습을 하는 시간 속으로 ᆢ


고흐 꽃병그림 ᆢ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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