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막 내리기 시작하던 즈음 남도로 떠났다. 먼저 고향으로 향했던 지인이 단톡방에 올린 강원도 봉평의 사진은 환상적이었다.
지인은 곧 고립될 것 같다고 했다. 눈 속에 고립이라니…. 내가 꿈꾸고 꿈꾸던 일 아닌가.
고속도로는 정체 없이 잘 흐르고 있었고 눈도 없었다. 졸다 깨다 하며 보니 어느 지점에선가 눈발이 날렸다.
하지만 고향이 가까울수록 해는 화창하고 산은 선명했다. 눈이 쌓이지 않는 고향 도시에 도착했다.
우리나라는 참 크기도 하지, 한 곳에선 눈이 무섭게 내린다는데 내가 도착한 곳은 청명하기 그지없다.
바람만이 불어가는 인적 드문 거리를 걸어서 시내버스를 타고 친정어머니 혼자 사시는 집으로 들어가니 어머니는 늘 그러듯이 언제 도착할지 모를 딸을 위해 나물을 무쳐놓으시고 쌀을 씻어 밥 할 준비를 마쳐놓으셨다. 문을 여는 소리가 나면 후다닥 부엌에 가셔서 쌀에 물을 부어 가스불을 켜신다.
절대로 미리 밥 하시는 법이 없다. 갓 지은 밥을 먹이겠다는 것이 어머니의 평생 신조다. 그 밥시간을 위해서 어머니는 정확한 도착시간을 늘 요구하시지만 나는 잘 알려주지 않고 느닷없이 들어가기 일쑤다. 뚝배기에서 익어가는 밥은 내가 옷을 갈아입고 짐을 정리하고 손을 씻고 나오면 얼추 뜸이 들어져 있다. 아흔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여전히 배추나물, 고사리나물, 시금치, 파래를 맛깔나게 무치신다.
늘 그러하시듯 밥은 반드시 고봉으로 푸신다. 평소 집에서는 먹을 수 없는 양이지만 이상하게 어머니집 밥은 술술 들어간다. 잡곡하나 섞이지 않은 막 지어진 쌀밥이라 씹을 것도 없이 삼켜진다. 보통 나이 드시면 미각이 떨어져 간을 못 맞추신다는데 어머니는 귀신같이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간을 하셨다. 어찌 이리 간을 잘 맞추셨냐 하니 마음을 써서 하면 된다고 하신다. 당신은 짜게 드시지만 짠 것 싫어하는 딸이라 엄청 신경 쓰신 것이다.
내가 밥을 먹는 동안에도 몇 번을 일어나고 앉고 분주하시다. 심지어는 먹고 있는 명태찜을 중간에 가져가 다시 데워오신다. 뚝배기에 누룽지를 하느라 물이 넘치면 금방 일어나 끄시고 계속 뭔가를 하러 일어나신다. 정신이 없지만 그러려니 하고 먹는다. 원체 그러신 분이니…
계속 먹으라는 타령이 끝이 없다. 예전에는 그 소리 좀 그만하라고 했지만 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없기에 한 귀로 듣고 흘린다.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딸이 설거지도 못할 것처럼 싱크대 앞에서 좀처럼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신다. 내가 하면 그릇 딸그락 거리는 소리가 시끄럽다시며.
겨울 초입에 어머니랑 둘이 김장을 했다. 남들 다 사서 하는 간절여진 배추도 절대 사지 않으신다. 남의 손을 못 믿으시는 것이다.
키도 크고 속이 빽빽한 해남 배추 30 포기를 자르느라 어깨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어깨가 아파서 힘을 못 쓰시는 어머니는 연신 내 앞에 앉아 반듯이 못 자르고 빗나간다고 잔소리를 하셨다. 내가 보기엔 너무나 정확한 반 가르기 인데도 어머니는 비뚤어졌다고 하신다. 일손 안 사고 딸년 시켰더니 배추 잘못 잘라 부스러기 만들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계속 구사리를 주신다. 밤에 절인 배추를 새벽에 내가 일어나기 전 다 씻어놓으셨다. 어찌 노인네가 그 많은 배추를 씻으셨는지 기가 찰 노릇이었다. 또 근 한 달간을 어깨 싸매고 사실게 뻔하다.
김장을 포기해 본 적이 없는 어머니께서 이제 내년부터는 각자 담으라고 하시니 더럭 겁이 난다. 몇 년 전부터 김장하지 마시라고 그리 말해도 코웃음 치시더니 정작 당신이 그리 말하시니 가슴이 덜컥하는 것이다.
어머니를 존재하게 하는 힘은 시장 보고 요리해서 자식을 먹이거나 자식집에 보내는 것이다. 1년 내내 양념재료들을 제철에 하나하나 사들였다가 겨울이 오면 꺼내어 당신 말대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장양념을 만들어내시는데 이제 내년부터는 하지 않으시겠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명절에 가서 유심히 어머니를 살펴봤다. 여전하시다. 같이 걸어봐도 연세에 비해 잘 걸으신다. 택시비 아끼려 먼 곳의 상점까지 한나절 걸려 걸어 다녀오셨다는 무용담을 말하시니 감사하다. 이렇게 강건하신 분이 내 어머니라는 사실이.
어머니와의 세월은 지고 지난한 세월이었다. 애증이 엮이고 엮인 시간이었고 한평생 어머니를 극복하는 것이 내 업이려니 했었다.
그래도 어머니 인생말년에, 내 나이 육십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 이리 어머니를 마음으로 안게 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어머니의 성정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혼자 잘 살아가고 계신 어머니가 고향에 계시니 얼마나 축복인가.
내가 잘 못 잘라 떨어져나온 배추 부스러기들로 이루어진 어머니집 김장김치는 온전한 포기로 담겨온 우리집 김치보다 더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