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를 또 왔다.

그 어느 하루 무덥던 날

by somewhere

어느 잠 못 이루던 겨울의 끝자락 밤.

망설이던 손가락으로 꾹 눌러 여행을 질렀다.


이리저리 생각하며 뒤챘지만 나는 결국 누르리란 걸 안다.

결제창을ᆢ숙박은 취소가능하지만 비행기는 안된다. 취소페널티는 혹독하다. 그러니 나는 불면의 겨울을 앓으며 이 늦은 4월 여행을 질렀다.


왜 교토인가ᆢ

교토를 봤기 때문이다.

나는 미지의 세계보다 내가 보았던 세계에 더 탐착 한다. 쓰고 보니 이상하다. 탐착이란 단어가 있는가? 대충 말하면 탐하여 집착하거나 애착한다는 뜻이다. 취기가 오르니 단어도 지어내는 것 같다.


2월 아직 춥던 교토를 휘 둘러보고 가슴에 남아 다시 4월의 교토를 왔다.


지금 나는 술기운이 많이 올라 자꾸 오타를 내서 지우고 다시 쓰기 바쁘다. 지난 2월 시댁 네 가족이 함께 모여 패키지로 일본을 왔는데 그때 젊은 조카들한테 배웠다. 일본의 편의점엔 신기한 요물들이 많다는 것을 ᆢ

그 애들은 푸딩이나 젤리 같은 것을 사서 방방 나누어 주기도 했다. 여간해선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던 편의점에 대한 개념이 깨졌다. 애들 따라서 아 ᆢ그래 일본 편의점에선 이런 것들을 사 먹어 보는 거구나 하고 알았다.

편의점은 비싸니까 아주 급할 때 빼고는 안 가는 곳이란 내 구닥다리 생각을 내려놨다.


그래서 오늘 밤, 불 밝힌 야사카 신사와 호젓하던 마루야마 공원의 밤을 걸어 내려와 초롱불들이 흐르던 기온거리를 건너서, 처음 만난 패밀리 마트에서 뭔지 모를 캔과 너트를 사 와 침대에 기대어 마시다가 기어코 헤롱대는 지점에 이른 것이다. 캔은 하이볼 같은 것이었다.


교토의 4월 밤에 나는 취했다.

벚꽃 피크는 피했지만, 겹벚꽃이 있다는 오래된 절들을 내일 가볼까 한다.

지난 여행에서 가지 않았던 니조성을 오늘 오후 다녀오며 한탄이 나왔다. 벌써 햇볕은 너무 뜨겁고 니조성은 그늘지고 서늘한 곳 하나가 없었다. 나는 우리나라 고궁 어느 한 자락처럼 좀 앉아 마음 다독일 곳 한두 군데는 당연히 있겠거니 했다.

4월 말에 벌써 이리 햇볕이 강렬하다면 교토의 여름은 어찌 된단 말인가. 내게 아무런 의미나 느낌도 없는 니조성의 공간들을 돌며 진저리가 났다. 진지하게 서양인들은 보던 니조성 방 벽화들을 나는 건성으로 보며 지났다. 삐그덕 대던 마루소리를 새소리라 하는 것만 마음에 들었다.

피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진짜 새가 지저귀듯 마루가 노래했다.


누적된 수면부족과 새벽 4시에 집을 나선 피로가 몰려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맡겼던 짐을 찾아 체크인하고 좀 쉬고 나오기로 마음먹었다.

니조성에서 숙소까지 자잘한 골목길들로 걸어 돌아왔다.


구글맵이 가리키는 길이 아닌 작은 골목들로 걸었다.

천천히 걸어오다 그 골목들 속에서 평안이 찾아들었다. 피곤이 가셨다.

큰길에서 한 길만 들어가면 적막한 주택가들이 나온다.

그 좁은 길들을 빙빙 돌며 마음과 호흡이 제자리를 찾았다.

검은 교복치마에 하얀 카바양말을 신은 여학생들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이유는 모르겠다.

나는 항상 그 교복 플레어스커트에 반접은 하얀 카바양말을 보면 마음이 시린다.


우리들 인생은 다 이 골목길 같지 않은가.

화려함도 없고 훤히 뚫린 시원함도 없지만 모퉁이마다 재잘재잘 이야기들이 스며있다.

녹슬고 이끼 낀 간판도 있고 거무튀튀 세월에 닳은 담장도 있고 그 사이 꽃이 담긴 작은 화단, 골목사이를 불어나가는 바람, 어딘가 비쳐지는 햇빛과 그늘도 있다.


나는 교토의

골목길에서 흘러가는 4월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며 같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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