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ᆢ꽂은 피고 지고.

교토밤은 ᆢ

by somewhere

어젯밤 꽤 술기운이 오른 채로 잠이 들었는데도 잠이 일찍 깨어 산책을 나갔다. 지도상에 커다란 녹색 네모로 있는 교토교엔을 향해 걸었다. 역시 골목길로만 걸었다.

이른 아침 낯선 길을 걷는 기분을 뭐라 할 수 있을까 ᆢ


선선한 공기, 아침 새들의 지저귐, 일찍 출근하는 이들의 발걸음, 마치 새로운 세상을 처음 만나는 것 같다.

지도에선 금방일 것 같았는데 의외로 멀다.

한 블록이 끝날 때마다 강렬하게 밀려오는 햇살.

그래서 얼른 다시 골목길로 스며든다.

넓고 고요한 초록의 교토교엔 아침은 황홀했다.

묵고 묵어 정령이 된 듯한 신령한 나무들이 살아 움직일 것 같았고 기대하지 않았던 겹벚꽃나무들이 환상처럼 피어있었다.

나는 곧잘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의 신을 만날 듯했다. 나무의 신, 꽂의 신, 햇살의 신ᆢ


교토교엔은 옛적 명망가들의 저택자리들이 있는 것 같고 거대한 왕궁 같은 교토고쇼가 있다.

그 저택이나 왕궁들은 내 알 바 아니라 관심도 없고 나는 그저 그 신령한 나무들이 가득한 초록의 장원이 좋았다.

일부로 만든 건지 어쩐지 모르지만 큰 소나무들이 분재처럼 휘어져 진짜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아 무서움이 일기도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갑자기 사물들이 살아나 말을 하곤 하는 장면들이 괜히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런 느낌이 온다.

인적 드문 이른 아침에 거대한 나무숲에 들어가면.

교토교엔의 북쪽 끝에 다다르자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도샤시 대학이 있다. 이렇게 까지 아침산책을 길게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왕 왔으니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지도에 저장은 해두었지만 진짜 가게 될 줄은 몰랐다.


교토교엔과 맞닿아 있으니 윤동주 시인도 이곳을 줄곧 걸었으리라. 봄이 되면 벚꽃을 보고 여름 되면 푸르른 나무속에서 시를 쓰고 책을 읽었을 것이다.

예상외로 유럽풍의 붉은 벽돌 건물들이 아름답고 그 교정 한구석지에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가 나란히 있다.

시비를 보고 있는데 눈물이 차오른다.

내게 윤동주는 눈물 없이 읽기 어려운 시인이다.

이 도시를 거닐며 별을 헤고 어머니를 순이를 생각했을 시인.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의 시는 영원이 되었다.

예수보다 짧았던 생애라 그의 시는 더 아프다.


이른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이 대학교정을 가로지른다.

나는 벤치에 앉아 그런 그들을 바라본다.

내 삶의 한 시절이 뭉텅 그들과 함께 지나가는 것 같다.

아침 산책치고는 꽤 많이 걸은지라 돌아갈 때는 버스를 타고 교토 3대 커피집중 하나라는 이름도 촌스런 스마트 커피숍엘 갔다. 아침 8시 30분경인데 줄을 서있다. 줄 서는 거 딱 질색이라 갈까 하다가 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기다리며 구글에 있는 리뷰를 보니 쏘쏘 했다. 별 기대하지 말라는ᆢ

하지만 내가 읽은 책 저자의 평은 따스했던지라 나는 기다려 들어갔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혼자이기도 하고 ᆢ

프렌치토스트와 하우스커피를 주문했는데 의외로 시간이 걸렸고 커피숍 분위기는 클래식했다.

시장통에 자리 잡고 있는데도.


시럽을 둘러서 먹는 토스트는 부드럽고 리치했다.

달리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토스트를 다 먹고 남은 커피는 진해서 밀크와 설탕을 타서 라떼로 마셨다.

커피숍을 나와 긴 시장통을 걸어 나오는데 몸이 힐링된 느낌을 받는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뱃속에 가득하다.

교토책을 쓴 저자가 그 토스트를 교토부심이라 했다.

시장거리를 벗어나 숙소로 돌아오며 온갖 해찰을 다한다.

골목에 있는 절이나 신사를 다 기웃거린다.

일본이 이렇게나 불교가 강했나. 불교인지 샤머니즘인지 모를 요상한 절들이나 제단들이 곳곳에 박혀있다.

숙소돌아오는 골목길, 어느 절

남들 다 어딘가로 행차했을 시간에 숙소에서 노리작거리다 오전 11시를 넘겨 닌나지ㆍ료안지를 향했다.

닌나지의 정원이 좋아 마루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바라봤다.

정원을 명상하듯 바라보는 저 여인을 뒤에서 바라보며.

닌나지에서 가까운 료안지까지 둘러보고ᆢ

세상 나는 돌정원이라는 걸 이해를 못 하겠다.

왜 그게 신비롭고 아름답다고 하는지.


내친김에 난젠지까지 가려 버스를 탔다가 잘못 내려 사십여분 걸어갔다.

그곳에서 또 지우인을 거쳐 기온거리까지 걸어왔다.

오늘 밤은 무릎이 너덜거릴 것 같다.


가모강에 어둠이 내려 많은 연인들이 짝지어 강둑에 앉아 있고 버스커는 기타 선율을 밤하늘에 날린다.

우두커니 앉아 듣다가 동전 두어 개 넣고 돌아온다.


오늘 밤은

무릎이 바람에 스치울 것이다.

딱 좋은 바람이 강위로 불어오고 사람들 사이로 불어와 어딘가로 가자고 하는 것 같은 밤이다.

걷는데 이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꽃잎은 바람결에 떨어져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데

떠나간 그 사람은 지금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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