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루리코인
교토의 셋째 날은 부슬비가 내렸다.
종일 젖은 공기가 내리듯ᆢ
교토의 북쪽 오하라의 잣코인, 산젠인을 갔다.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고서 내린 곳은 한적한 산골마을이었다.
물기에 젖은 산천은 모든 색깔이 더 선명했다.
유채꽃은 더 노랗고 나무와 풀은 더 초록 초록했다. 전원교향악이 울려 퍼진다는 상투적 표현이 딱 어울렸다.
산젠인과 잣코인은 가까운 거리지만 사람들은 더 크고 화려한 산젠인으로 주로 간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 중 나만 잣코인을 가는 듯했다. 걸어가는 동안 사람을 전혀 보지 못했다. 들판과 오솔길, 동네를 지나가는데 너무 인적이 없어 슬며시 겁이 나기도 했다.
내가 본 책의 저자가 눈 오는 날 잣코인 가면서 이대로 사람이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했던 말이 이해되었다.
정말 작은 절.
먼저 온 젊은 서양 남자 하나가 작은 정원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을 보니 안도감이 느껴졌다.
이끼 낀 지붕과 동백꽃 한 송이 떠서 흘러내리는 작은 물줄기가 한 뼘쯤 되는 정원을 적신다.
법당 앞엔 늦핀 벚꽃나무는 비에 연신 잎을 떨구고 있다.
적막한 절마당에 나도 하염없이 앉았다가 일본인 노부부가 두 커플 오시기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작은 절에 초라하게 펼쳐진 좌판이 있어 향낭하나 사서 가방에 매달고 나왔다.
사람들이 제법 많이 가는 산젠인은 훨씬 크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어 절 마루에 앉아서 내다본다.
그 다다미방 마루를 향해 선 순간 탄성이 흘러나왔다.
철이 되어 피어 난 꽃과 철이 되어 푸르러진 나무가 법당 툇마루 앞에 있어 큰 액자 그림이 되었다. 자연 앞에 앉아 조용히 보기만 할 뿐이다.
일본의 자연은 사람을 고요하게 만든다.
내가 이 날, 아름다움의 벼락으로 심장이 멎을 듯했던 곳은 루리코인이라는 곳이었다.
넓은 2층 다다미방 서재로 올라갔을 때,
그저 무릎 꿇고 자연 앞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도 그저 산 앞에 집을 지어 창을 내놨을 뿐이데 그 창을 통해 비쳐진 초록이 숨을 멎게 한다. 창 앞에 큰 탁자가 놓여있는데 그 탁자에 초록이 어리어 사방 가득 초록의 그림자가 번져나간다.
아침까지도 루리코인은 안중에 없었는데 지도 만지작 거리다 저장되어 있는 거 보고 돌아오는 길에 들려봤을 뿐이었다.
여행에 참고하는 책을 볼 때 냅다 저장해 두는데 왜 했는지 뭐가 좋다는 것이지 나중에 보면 생각이 안 난다.
어쩐지 입장료가 다른 곳의 세배쯤 비쌌다.
일 년에 두 달 정도만 문을 연다고 한다.
단체 관람객도 안 받는다고 했다.
자연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에 자연에 파 묻힌 듯 지어 공간 활용으로 이렇게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하이쿠 시처럼
부러 여러 말할 것 없이
가장 정제된 미를 단숨에 보여준다.
일본 문학들을 만나면서도 느꼈던 지극한 탐미를 그들의 자연에서 본다. 자연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루리코인의 창들 같다.
절제할 수밖에 없는 기모노 속에 갇혀 무릎 꿇고 고요히 찻잔을 드는 모습이, 찻잔에 어리는 꽃잎을 바라보는 모습이 연상된다.
일본인들은 어느 정자든 물 앞에 지어 혹은 일부러 연못을 만들어 그곳에 비쳐지는 잔영들에 빠져드는 것 같다.
교토 시내로 돌아와 밤에 갔던 고다이지의 밤 풍경도 대단했다. 조명에 비친 나무들이 물에 비쳐 흔들리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지나는 여행자들 모두 reflectionᆢHow reflection ᆢ하며 탄복한다.
일본사람들은 실체를 그대로 보는 것보다는 물에 어리는 reflection을 통해 흔들리는 환영을 보는 걸까.
아름답다.
물에 어리는 교토의 4월,
지극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