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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Apr 20. 2022

I can’t go on, I'll go on 강원도

아이슬란드  space oddity

어쩌면 입을 일이 생길지 몰라 정리해 넣지 않은 겨울 옷이 아직 옷장 안에 있는데, 벌써 한낮은 반팔을 입어야 할 정도로 덥다. 갈수록 봄이 없다. 겨울이 좀 얇아지는 듯하면 바로 여름을 향해 가는 듯하다. 더운 것을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은 점점 살기가 힘들다.

요즘 막연히 꾸는 꿈이 강원도 가서 사는 거다. 남도 제일 끄트머리쯤 사는 나에게는 강원도는 거의 외국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는 곳이다.

더운 곳에서 살기가 싫다기보다는 진짜 추운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다. 갈수록 현대사회는 겨울을 느끼기가 힘들다. 모든 실내는 난방이 잘 되어있고 이동할 때도 거의는 차로 움직이기에 추위 속에서 벌벌 떨며 걷거나 서성이는 일들이 갈수록 없어진다.

언젠가 캐나다 북부지방을 간 적이 있다.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마치 나는 내 영혼의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단지 나무가 앙상하고 춥다는 이유 하나로. 거리가 황량하고 바닷빛이 얼어붙어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몇 해 전 잠깐 아이슬란드 여행 붐이 일었을 때 (유명 여행 예능 프로그램 때문에) 눈여겨보고 있다가 오랜 지인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슬란드. 얼마나 이름부터 겨울인가. 겨울왕국이 따로 없다. 그냥 아이슬란드다.

가기 전 아이슬란드 관계되는 책이나 영화를 보다가 <월터의 꿈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를 봤다. 약간 초현실적인 이야기들과 그 영화속에 흐르던 몽환적인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는 너무 잘 어울렸다.  술 취한 비행사가 노래하던 선술집과 알딸딸한 상태로 비행을 하는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지극히 아이슬랜드적으로 느껴졌다.

 아이슬란드라는 땅덩어리 자체가 워낙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그 영화 속의 이야기들이 실제로 일어났을 법하다고 여겨진거 아닐까.

데이비드 보위 <space oddity>라는 노래의 음색과 분위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땅.

이 노래는 데이비드 보위의 목소리가 모든걸 다 표현해준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우주 속을 유영하는 비행사 톰. 그에게 가 닿으려고 무수히 타전하는 ground control.

어디선가 그 연결이 끊어지고 푸른 구슬 같은 지구를 바라보며 우주에서 떠다니며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는 메이저 톰. 그 광막한 외로움과 이상한 평안함이 보위의 목소리에 다 담겨있다. 묘한 소리다.


생각해보니 데이비드 보위는 내가 예전에 좋아하던 어떤 영화 속의 주인공 아이가 끝없이 팬레터를 보내던 락스타였다. 현실에서는 매일 따돌림과 무시를 당하던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데이비드 보위에게 늘 편지를 쓴다. 아무런 응답도 없지만 그냥 하염없이 쓴다. 자신의 쓰디쓴 현실에서 돌아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응어리진 자신의 마음을 쓴다. 친구들의 놀림과 따돌림에 어지간히 이골이 나 그럭저럭 살 수 있게 될 정도로 무디어진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아이는 결국 그 마을을 떠나자는 엄마 말에 환호한다. 새로 이사 간 학교에서 특이하지만 비슷하기도 한 친구들을 만나고 재미있게 살아보려 할 즈음, 음주사고를 낸 무능한 뮤지션 아버지로 인한 꼬투리가 잡혀 다시 그 놀림이 시작되려는 찰나, 자신의 지긋지긋한 예전 별명을 스스로 크게 외치며 떼창으로 부르게 하면서 자신의 슬로건을 외친다.

 i can’t go on, I'll go on. 자신이 조직한 밴드의 이름이기도 하다.

갈 수 없지만 간다. 나는 간다. 나의 고통 위로 나는 갈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간다.

청소년 영화였는데 아이들과 함께 보면서 늘 나만 감동을 받는 듯했다. 제목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거기 나오는 소년의 엄마가 <프렌즈>라는 시트콤의 유명한 여자 주인공 중의 하나라는 것도 나는 최근에 알았다.


또 몇 년 전에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을 읽으며 I can’t go on, I'll go on 이 사무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에 나온 대사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죽음을 명징하게 보면서 삶을 살아나갔던 어떤 내과의사의 자서전속에서 그 슬로건을 조우했다. 그 책 또한 너무 가슴 저렸다. 이 아름답고 강한 사람들…

영화와 책과 그 속의 사람들과 삶이 노래로 연결되어 하나의 궤를 이루며 내 안에 남는다.

   I can’t go on, I'll go on.


나는 아이슬란드에서 겨울나는 꿈을 꾼다. 그래서 예행연습으로 강원도에서 사는 꿈을 꾼다.

집안의 모든 사정들 여러 가지가 꼬리를 물고 나온다. 마치 월터에게 날아들던 여러 고지서들처럼.

내 안의 소년이여 외쳐다오, 너를 야유하던 그 많은 소리 위에 네가 압도적으로 외치던 그 소리.

I can’t go on, I'll g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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