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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somewhere
May 06. 2022
5월 그 어느 일요일, 장터를 지나 숲으로…..
나의 해방 일지
놀라운 바람이 불어오는 일요일 오전,
교회당 밖으로 걸어 나오는 내게 못 견딜 바람이 푸른 나뭇잎들과 함께 밀려왔다.
그 길로 집에서 신발을 갈아 신고 내가 가끔씩 가는 숲으로 향했다. 차로 20여분 거리.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날이다.
가다 보니 내가 태어나 자란 읍내 5일장이 열리고 있다. 장은 분주하고 노점들이 늘어서 있다.
꾸부정한 어르신들이 천천히 장을 보고 계신다. 우리 어머니도 딱히 필요한 것이 있지도 않은데 장이 서는 날이면 본능적으로 가고 싶어 하신다.
집 주변의 마트보다는 장을 가고 싶어 하신다. 조금이라도 싸게 사야 하는 세월을 오래도록 사시는 동안 빠짐없이 가셨을 장이 5일 주기로 어머니를 부르기 때문이다.
어려서 퍽이나 멀리 느껴졌던 큰 이모집 대문 앞을 지나간다.
너무나 오래된 나무 대문 집. 육중하게 닫혀있어 그 문 속에 뚫려있던 또다른 작은 문으로 끼어들어가던 이모집. 아침저녁으로 심부름을 다니던 그 집.
꽤나 부잣집이던 그 이모집이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지만 무너지지도 않고 그대로 서있다. 그 주변은 이미 다른 건물들로 다 바뀌었는데 이모집만 그대로 있다. 문이 잠겨있어 안을 볼 수도 없다. 수없이 드나들던 그 집.
나무 대문을 지나 걸어 들어가면 큰 기와집이 또 두 채가 그 안에 있다. 서울에서 외삼촌들이 오거나 하면 외가 식구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던 집들이다.
가난하던 우리 집보다는 부잣집이던 큰 이모집에서 주로 모여 밥을 먹곤 했다.
다시 삼촌들이 서울로 가는 밤이면 그 많은 식구들이 모두 기차역으로 나가서 떠나는 식구들을 오랫동안 배웅해주고 돌아오곤 했다. 그 밤에 이모 엄마 사촌형제들 훌렁훌렁 어울려 걷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배웅을 받으며 서울로 돌아가던 삼촌들은 그 기차 안에서 마음이 따스했을까… 다시 서울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돌아갔을까.
엄마는 그 시절 서울행 기차가 서울에 들어서면 기차 안에서 나오던 패티김의 서울찬가를 들을 때 언제나 눈물이 왈칵 나왔다고 말씀하셨다.
이 무섭도록 큰 도시에서 내 피붙이들이 어찌어찌 살아가나 싶어서 눈물이 나왔다고…..
요즘은 서울을 가도 서울 사는 형제들에게 기척도 없이 내 일만 보고 내려온다.
형제라도 아무 때나 불쑥 가서 만나는 것은 각자의 생활리듬이 있기에 부담스러운 탓이다.
사람살이라는 것이 참 이상한 것이 너무 인간관계가 없으면 결국 삶이 메마르고 건조해지지만, 너무 분주하면 넋이 나간 듯 하니 그 사이 가장 좋은 접점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이 어렵다. 그 균형점을 맞추며 산다는 것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요즘에사 가끔 외롭다고 느낀다.
지금까지는 기를 쓰고 혼자 있으려고 애를 쓰며 살았는데 이제 애를 쓰지 않아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지금, 가끔 막막하게 외로운 느낌이 밀려올 때가 있어 당황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럴 때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봤던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서 이 대사를 듣는 순간 마음이 통쾌했다.
<좀… 내성적인 사람들은 그냥 내성적으로 살게 두면 안되나? 다 중고등학교 오락부장 출신들처럼 살아야 사회생활이 되는 것인가?>
회사에서 사원들이 사내 동호회 활동하도록 지원하며, 활동을 하지 않는 사원들을 관심병사 보듯이 지켜보며 계속 상담하고 있어 그 때문에 피곤해진 한 사람의 푸념이다.
요즘 현대사회는 실은 깊이 있는 소통들을 하지 못하면서 끝없이 공동체 정신과 유대감을 부르짖는다.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아들의 자기소개서에서 자신이 얼마나 공동체를 위한 마인드가 준비되어있는지 스스로 어필하고 있는 글들을 보며 이상하게 서글펐다.
나를 닮아 다소 내성적인 아들은 고등학교 때 다들 남 앞에 서서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외쳐대는 세상에 피로와 겁이 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학 입학 자소서나 취준 자소서도 결국은 자신이 얼마나 공동체를 위해 다른 사람들과 잘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인지 연대감을 갖고 공동체를 위해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필사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 같다.
<나의 해방 일지> 주인공 미정처럼 그런 성향이 부족한 사람들은 겁을 집어먹고 사람들 사이를 살아나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나는 지금 내가 말 안 하고 싶을 때는 하루 종일도 말 않고 지낼 수도 있다. 주말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처럼.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숲에 그것도 이른 시간에 간 탓에 혼자 오지게 그 조용한 5월의 숲을 만끽했다.
숲에서 돌아오는 길가에 있는 처음 보는 찻집을 들어왔는데 창밖 풍경이 놀랄 정도로 아름답다.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의 나뭇가지들 그리고 산. 그 앞을 흐르는 조그마한 시내…..
이 카페의 주인 내외도 서로 마주 앉은 채 아무런 말이 없다.
길가다 아무 데나 차를 대고 들어온 찻집이 뜻밖에 들을만한 음악이 흐르고, 탁자마다 책이 꽂혀있고 이런저런 그림들이 걸려있는 데라면, 그리고 촌스러운 커튼이 양갈래로 늘어진 창밖 풍경이 말을 잊게 하는 5월의 눈부신 생명의 초록 봄이라면….
호사스러운 날이다.
또 돌아가며 5일장을 지나가야 한다.
변함없이 촌스런 윗도리 아랫도리들이 걸린 노점상들을 보다가 충동적으로 꽃무늬 몸뻬바지를 하나 사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뭐라도 사다 드리면 좋아하는 어머니가 몸뻬바지를 보며 추억에 빠질지 모른다.
걸린 옷들 사이로 5월의 바람이 너훌 너훌 먼저 옷을 입어보고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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